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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카카오 정점에 이른 검찰 칼날…그날 아침엔 무슨 일이?

시장 달궜던 'SM 인수 쩐의 전쟁' 수사, 그 의미와 파장은?

[취재파일] 카카오 정점에 이른 검찰 칼날…그날 아침엔 무슨 일이?
▲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그제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위원장을 불러 20시간 넘게 조사했습니다. 검찰은 카카오가 지난해 2월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지분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 엔터 주식 시세를 조종했다고 보고 있는데, 김 위원장이 이를 지시하거나 보고 받았다고 판단하고 강도 높은 밤샘 조사를 실시한 겁니다. 검찰은 늦어도 다음주에는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신병 처리에 대한 결론을 낼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해 초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SM 인수 쩐의 전쟁'에서 촉발된 수사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공룡 엔터 그룹들의 피 튀기는 '쩐의 전쟁'

SM, 카카오, 하이브 인수전 타결

'보아'에서 시작해 '에스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을 숱하게 배출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지난해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습니다. 창업자인 이수만 씨와 SM 이사진 사이 분쟁에서, 하이브는 이수만 측의 우호세력으로, 카카오 그룹은 SM엔터 이사진의 우호세력으로 참전했습니다.

초반 상황은 SM엔터 이사진과 카카오 측에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2023년 2월 7일, SM엔터 이사진은 카카오에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신주 (새 주식) 와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카오가 2,171억 원을 들여 SM엔터 지분 9.05%를 취득해 단독 2대 주주로 등극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법은 기존 주주를 배제하고 다른 누구를 콕 집어 신규 주식을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경영진이 제 멋대로 기존 주주를 제외하고 제3자에게 새 주식을 발행해버리면, 기존 주주들은 새 주식을 인수할 기회를 박탈 당할 뿐 아니라,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불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SM엔터 이사진은 당시 이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논리를 마련했습니다. '신사업 전략인 SM 3.0 실현을 위해 카카오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자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수만 씨 측은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수만 씨는 SM이 카카오를 콕 찍어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불공정하니 이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내는 한편, 또 다른 공룡 엔터기업 하이브와 손을 잡습니다. 2월 10일, 하이브는 SM 지분 14.8%를 4,228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SM 주식을 주당 12만 원에 '공개매수'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바야흐로 개막된 거대 기업들의 '쩐의 전쟁'. 카카오는 재반격을 고심합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에 맞불을 놓는 '대항 공개매수'를 선언할 거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카카오는 이 방안을 실행하지 않습니다. 검찰은 카카오가 이수만 씨가 제기한 가처분 소송을 의식해 '대항 공개매수'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카카오가 SM엔터로부터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받을 당시 제한 요건을 피해가기 위해 '전략적 제휴'라는 논리를 들었는데, '대항 공개매수'를 실행해버리면 '결국 카카오의 지분 취득은 경영권 목적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전략적 제휴 목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받았다'는 논리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카카오가 '대항 공개매수'를 진행하지 않으면서 전황이 하이브 쪽으로 기울어가던 찰나, 변수가 발생합니다. 2월 초 9만 원대에 머물던 SM엔터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이브는 주당 12만 원에 주식을 장외에서 공개매수하겠다고 선언한 상태. 주가가 12만원 보다 싼 가격의 환경이어야만 하이브가 '비싸게' 주식을 매수하는 셈이 되고, 공개 매수에 응하는 지분도 많아져 하이브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의 주가 폭등은 하이브에게는 대형 악재가 되었고, 결국 계획했던 공개 매수 규모를 대부분 달성하지 못하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이브가 이 주가 폭등 과정에 '수상한 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지난해 2월 16일과 17일, 27일에 '원아시아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 자금 1100억 원이 SM 주식을 매입하고, 2월 28일엔 카카오그룹 자금 1300억 원이 SM 주식을 매수하는데, 이게 주가를 올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행위였다는 겁니다. 카카오는 금감원에 신고를 접수했고, 금감원 특사경은 곧장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지난해 7월 기자들과 만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카카오 수사와 관련 "실체 규명에 대해 자신을 갖고 있다"고 밝히며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금감원은 카카오 측의 부정한 시세조종 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내리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습니다.
 

김범수 겨눈 칼날…지난해 2월 28일 오전 무슨 일이 있었나?

카카오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1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가 공개 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시세 조종을 실행했다고 보고 그를 구속기소했습니다. 올 4월엔 1100억 원을 들여 SM 주식을 매입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지창배 대표도 구속기소했습니다. 카카오가 사모펀드 측과 공모해 공개 매수 저지를 위한 시세조종을 실행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들 재판에서는 검찰이 확보한 시세조종 공모 증거들이 여럿 공개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28일 오전 카카오 투자심의위원회 구성원들의 단체 대화방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이 대화방에서 김기홍 카카오 재무그룹장은 "오늘 공개매수 꼭 저지해주세요~ㅎ"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배재현 대표도 "위험해보일지라도 도와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긴 겁니다.

이준호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증언도 이목을 끌었습니다. 카카오 내부자인 이준호 부문장은 지난 5일 재판에 나와 "배재현 전 총괄이 지창배 원아시아 대표에게 1000억 원 정도 SM엔터 주식을 사달라고 얘기했다"며 "배 전 총괄이 지 대표에게 (주식을 매입하면) SM의 굿즈 사업을 주겠다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검찰은 김범수 위원장이 이러한 카카오의 공개매수 저지 계획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찰은 특히 (A)"위험해보일지라도 도와달라", (B)"오늘 공개매수 꼭 저지해주세요~ㅎ" 등의 메시지가 오간 지난해 2월 28일 아침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카카오그룹이 1300억 원 이상을 동원해 SM엔터 주식을 매수한 날인데, 이날 아침 8시 반에는 김범수 위원장, 배재현 대표 등 카카오그룹 핵심 멤버들이 참석한 투자심의위 회의가 열렸습니다. 검찰은 (A) 메시지가 이 회의 개최 직전, (B) 메시지가 이 회의가 끝난 직후 전송됐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회의 직전과 직후로 '공개매수 저지'를 언급하는 구체적인 메시지가 오갔는데, 과연 김범수 위원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관련 내용이 일절 논의되지 않았겠느냐는 겁니다. 검찰은 올해 카카오 그룹 관련자들을 꾸준히 소환조사해 이 메시지 외에도 당시 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증거를 수집해 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

배 씨와 지 씨 측은 재판에서 '지분을 매입한 건 이수만 씨 측과 지분율 경쟁을 하기 위함이었지,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시세 조종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카카오의 매수 패턴도 SM엔터 주가를 급격히 올리지 않기 위해 통상의 시세조종성 주문과 달리 점진적으로 나타난다며, 인위적인 시세조종이 아니라고 검찰 논리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제시하는 여러 증거들도 평가절하합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오간 '공개매수 저지'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공개매수 저지가 곧바로 시세조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분을 최대한 확보해 하이브가 SM엔터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함축적인 표현일 뿐이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카카오와 원아시아파트너스 간의 공모를 증언한 이준호 부문장에 대해서도 "검찰 압박에 허위 증언을 반복하고 있어 신뢰하기 어렵고, 반대되는 물적 증거도 많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유·무죄 넘어 돌아봐야할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리스크'


이미 기소된 사람들을 포함해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김범수 위원장까지, 법적 책임에 대한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앞으로도 치열하게 진행될 재판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들에 대한 유무죄와는 별개로 이번 사건에서는 생각해봐야 할 여러가지 사회적 의미들이 있습니다.

우선 카카오톡은 물론 택시와 대리운전, 은행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카카오그룹>의 추가 사업 확장 방식이 다시 한 번 사회적 평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카카오 전 임원들의 변호인들은 "기업의 지분 매입과 경영권 방어 과정에 무리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30일 김범수 위원장과 각 계열사 CEO등 20여 명이 참석한 경영 회의에서 준법 경영 통제를 위한 기구를 마련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시세 조종 혐의와 관련된) 최근 상황을 겪으며 나부터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한다"며 "더 강화한 준법 경영 통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도 '혁신을 통해 발전해야 할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공개 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시세조종에 이용했다면 문제가 크다'는 취지로 사건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삼성 그룹 수사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집중적 대기업 수사인 셈인데, 결과에 따라 최근 '무뎌졌다'는 평을 받는 검찰의 기업 수사력이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공개매수'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 사실상 첫 법적 판단이 이뤄지는 사건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공개매수제도'의 도입 취지가 '모든 주주에게 동등한 매도 기회를 부여하여 주주평등을 도모하고, 지배권 경쟁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목적을 갖고 공개매수 제도를 우회해 지분 확보에 나서는 양태를 합법으로 용인하면, 일반 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공개매수 제도' 유지와 발전에 큰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카카오 측은 "하이브나 SM엔터 소액주주 등 어느 누구도 실질적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검찰이 도그마에 빠져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샘표식품 주식을 장내 매수한 풀무원의 사례나, 제일화재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장내 매수에 나선 한화그룹 사례 등 경쟁 기업의 공개 매수에 장내 매수로 대응한 사례는 많았다는 반박도 제시합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도 대기업 총수에 해당하는 김범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는 많은 고민이 따를 것"이라면서도, "실제 영장 청구가 이뤄진다면 카카오톡 메시지는 물론 당시 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총수의 신병 처리여부보다도 중요한 건, 한국 기업과 자본시장의 성장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양태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규율할지에 대해 수사기관과 법원이 앞으로 얼마나 깊은 고민을 이어가느냐일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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