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약해 육상 시작한 데이브 워틀
1970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세계대학경기대회) 800m 경기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는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1971년에는 부상으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는데 뮌헨 올림픽이 열린 1972년에 재기에 성공하며 잇따라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1972년 NCAA 실외 육상선수권 1500m에서 우승했고 다른 미국 국내 대회에서는 800m 우승, 그리고 미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800m 세계 타이기록(1분 44초 3)을 작성하며 정상에 올라 뮌헨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행운의 부적' 골프 모자
워틀의 트레이드 마크는 바로 '골프 모자'였습니다. 그의 분신과도 같았는데 모자를 쓰고 달려서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도 눈에 잘 띄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모자를 쓰고 달리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트랙 육상 선수가 모자를 쓰고 달리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습니다. 모자를 쓰면 불편하고 벗겨질까 봐 신경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워틀은 모자를 썼습니다. 그는 머리를 길게 길렀는데 달릴 때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아 걸리적거리는 것을 막고 또 앞머리가 눈을 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자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모자를 쓰다 보니까 자신의 '분신'으로 받아들였고, 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수 생활 내내 모자를 쓰고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모자를 정말 소중하게 여겼는데, 어느 대회에서 한 팬이 그의 모자를 가지고 달아나자 경기장 밖까지 쫓아가서 모자를 되찾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에게 모자는 '행운의 부적' 같은 것이었습니다.
뮌헨 올림픽에서 '인생 레이스'
이 경기를 생중계하던 미국 중계진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달도 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마지막 직선 주로에 접어들자 워틀은 폭발적인 스퍼트를 펼쳤습니다. 결승선까지 50m를 앞두고 3위를 달리던 케나 선수를 추월해서 메달권에 접어든 뒤 5m를 남기고 2위 케냐 선수도 추월했습니다. 이제 그보다 앞선 선수는 소련의 예브게니 아르자노프 딱 1명. 하지만 금메달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남은 거리가 워낙 짧았기 때문입니다.
워틀이 온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1위였던 아르자노프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결승선을 넘어선 것입니다. 육안으로는 두 선수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간발의 차이. 최종 결과는 워틀의 승리였습니다. 그의 기록은 1분 45초 86. 0.03초 차 역전 우승이었습니다. 800m 경기에서 초반 500m를 꼴찌로 달리다 소름이 돋을 만큼의 엄청난 막판 스퍼트를 보이며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전극을 펼친 것입니다. 아쉽게 2위에 머문 아르자노프는 800m에서 이 경기 전까지 4년 동안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무대인 올림픽에서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워틀은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운이 좋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르자노프가 골인지점 300m를 남기고 너무 일찍 스퍼트를 하는 바람에 막판에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오버페이스했다. 나는 180m를 남기고 스퍼트를 해서 마지막에 힘이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워틀의 이 금메달은 미국 육상 역사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후 52년이 흘렀지만 미국이 이 종목(남자 800미터)에서 워틀 이후 지금까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습니다.
흥분한 나머지 골프 모자 쓰고 메달 받아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