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모아타운 '1호' 번동서 쫓겨나는 세입자들
특히 서울 번동에서 곪아가는 세입자 보상 갈등은 심각하다. 오 시장의 '1호 모아타운'으로 당장 내년 초 철거를 앞둔 곳이지만 이주를 통보받은 세입자들과 상가 임차인들은 한 푼도 보상 못 받을 상황이라 집단행동까지 준비 중이다. 토지보상법에 따라 수용도 이뤄지는 대규모 재개발과 달리 소규모주택정비법을 적용하는 모아타운 개발엔 상가 임차인 손실 보상이나 세입자 이사 비용 보전 의무 등이 없기 때문이다.
번동에서 10년 넘게 봉제 공장을 운영한 한 자영업자는 지난달 말 건물주로부터 "이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가 제시 받은 '보상안'은 "두어 달 치 월세는 내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고작이었다. 영세 봉제업이지만 아무렇게나 포장해 들고 나갈 순 없는 기계 장비만 20대가 넘는다. 이사 준비부터 새 일터를 마련해가기까지 손실을 벌충하는 안은 아예 논의조차 없다. 일반 포장이사 비용도 안 되는 200~300만 원만 받고 나갈 수는 없다는 게 이 자영업자의 주장이다.
이렇게 시 역점사업으로 인해 쫓겨날 판인 세입자들과 관련해 서울시는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대책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름"이란 설명을 내놨다. 번동 모아타운은 "인·허가권자인 자치구에서 조례를 적용해 사업시행계획 인가 시 인가 조건으로 세입자 손실 보상을 마련토록 권고하였으므로" 그렇다는 것이다.
선의에 기댄 '보상 가능성'이 "대책"이라는 서울시
실제로 번동 모아타운에서 4년간 식당을 운영한 한 자영업자는 지난주 조합에 보상을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보상할 의무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SBS는 조합의 입장을 듣기 위해 조합 사무실을 찾았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모아타운은 태생부터 세입자 보상 갈등 불씨를 품고 있었다. 미니 뉴타운이라 할 수준의 재개발 정책이면서도 '소규모'라고 강변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번동 모아타운만 해도 규모는 광화문광장과 맞먹는 4만㎡에 달한다. 1,200세대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서울시는 소규모가 맞는다면서 어정쩡한 조례로 사업자 선의에 기댄 '보상 가능성'만 열어 놓으면 괜찮다는 투다. 전체 구역을 단지 1만㎡ 이하로 쪼개 나눠 가졌을 뿐인 조합 5곳이 사무실까지 함께 쓰는 '공동사업'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우연치 않게 5개 사업이 동시에 진행됐을 뿐"이라고까지 말했다. 눈 가리고 아웅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100곳 목표'로 갈등 조장하고…"안 싸워야 선정"
수도의 주택 공급 정책이 이렇게 '우연'에 기대 이뤄질 때 서울시민은 불행해진다.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 '우연치 않게' 곳곳에서, 동시에 추진되길 바란 나머지 서울시는 올해 초 "모아타운을 수시로 공모하겠다"며 '100곳 지정'을 목표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가 지금 서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아타운 갈등이다. 다세대‧다가구가 밀집한 이른바 빌라촌마다 모아타운 추진 깃발 아래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나이 든 건물주와 젊은 빌라 투자자 간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5일 보도로 전한 서울 삼전동 찬반 갈등은 그 한 예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주민 갈등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아 하는 분위기다. 해명자료에서 서울시는 "주민 갈등 및 투기 우려가 큰 지역의 경우 대상지 선정위원회 심의 시 선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100곳 선정을 공언해 동네를 두 쪽 내놓고는 '싸우지 않아야 선정될 수 있다'고 발을 뺀 셈이다.
서울시는 특히 삼전동 일대가 주택 노후도 기준도 충족하지 않아 "공모 신청이 불가"하다고도 했다. 보도 직후 서울시 관계자는 "거기는 작년부터 갈등이 있고 노후도도 떨어져 (선정) 안 하는 게 원칙"이라고 자못 느긋해했다. 엄연히 심의위원회까지 꾸려놓고도 '특정 지역은 선정 안 할 것'이라고 말할 용기로, 전날까지 모아타운 동의서에 지장을 찍던 주민들에게 '당신들 염원은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공지는 왜 못 하는 것일까.
"도시개선 책임 주민에 떠넘긴 것"…"서울시가 법 개정 건의해야"
낙후 지역을 개선하는 건 도시정책을 짊어진 서울시의 책임이다. 주민의 필요를 챙겨 꼼꼼한 계획으로 도시를 변모시켜야 할 서울시가 내년 선거를 앞두고 '100곳 선정'이라는 목표치를 먼저 제시해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은 "지금의 모아타운 정책은 서울시의 책임을 '주민 신청'이란 미명 아래 떠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이상적인 미래 모습을 숙고할 시간도 없이 주민들을 "개발 논리 한복판에 끌어들여 서로 싸움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민석 서울시의원(국민의힘, 마포1)은 "서울시가 세입자 권익을 위해 국토교통부에 소규모주택정비법 등 관련 법 개정을 건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아타운이란? 다가구·다세대주택 소유자들이 개별 필지를 모아 소규모 공동 개발하는 기존 가로주택 정비사업 '모아주택'을 묶어 규모를 키운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 신축과 노후 주택이 뒤섞여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 저층 주거지가 모아타운 사업지로 선정될 경우 서울시가 층수 제한 완화와 지하 주차장 등 건설 지원, 인허가 절차 간소화 같은 혜택을 준다. 주민 30% 동의만으로도 대상지 신청이 가능하다 보니, 올해 초 서울시가 '100곳 선정'을 목표로 수시 공모제를 도입한 뒤 서울 곳곳에서 추진 움직임이 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