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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ETF'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스프칼럼] 패시브 투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글 : 김학균 리서치센터장)

스프칼럼 김학균
경제적으로 진보주의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보수주의는 시장의 주도적 역할을 중시한다. 대공황 이후 1960년대까지 서구 사회의 지적 헤게모니는 진보주의자들이 쥐고 있었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즈 경제학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당대의 가장 권위 있는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즈의 처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후예인 민주당은 물론이고 반대 정파인 공화당조차 케인즈 경제학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화당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1971년, '우리는 이제 모두 케인즈주의자들이다(We are all Keynesian now)'라고 말하기도 했다. 케인즈 경제학의 권위에 금이 가기 직전에 나왔던 보수정파 대통령의 자기 고백이었다.
 

패시브 투자의 시작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90%가 넘었다. 그야말로 큰 정부의 시대였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시장의 효율적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있다는 철학을 가졌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튼 프리드먼 등의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은 스위스 몽펠르랭에서 정례 회동을 가지면서 전의를 다졌지만, 1960년대까지는 케인즈 경제학의 권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보수주의자들의 진정한 반격은 젊은 금융공학자들의 연구실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해리 마코위츠는 1952년 '포트폴리오 선정'이라는 짧은 논문에서 수익은 위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주장을 폈고, 1962년 윌리엄 샤프는 '자본자산가격결정이론(CAPM)'을 만들어내면서 위험의 개념을 세분화해 정리했다.

이런 흐름을 집대성한 이는 보수주의 경제학의 성지인 시카고대의 유진 파마 교수였다. 유진 파마는 '효율적 시장 가설'을 통해 주식시장이 너무나도 효율적이기 때문에 미래의 주가 예측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주가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정보가 반영돼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초과이익을 얻기 힘들고, 초과 이익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핵심은 시장에서 이뤄지는 결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었고, 이들은 시장 대표지수의 성과를 반영하는 패시브 투자의 수익률을 자유롭게 투자 종목을 사고파는 액티브 투자가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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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경제학의 권위는 1960년대 중반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케네디 사후 대통령에 올랐던 존슨은 '위대한 사회(great socirty)'라는 케인지안들의 원대한 포부가 투영된 복지국가 건설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늘어나면서 물가는 뛰기 시작했고, 여기에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깊이 빠지면서 전쟁에 쏟아붓는 비용도 급증했다. 이래저래 정부가 돈을 풀면서 불안했던 물가는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맞물리면서 구조적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하면서 케인즈 경제학의 권위는 추락했고, 1980년대부터 정부보다는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을 중시하는 시대가 열렸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는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 정부 자체가 문제이다'라는 취임사를 남기면서 1980년대를 열었다. 신자유주의와 유진 파머 등이 주창했던 효율적 시장에 대한 믿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았다. 시장 중시 경제학의 태두인 밀턴 프리미먼이 재직하고 있었던 시카고 대학은 보수적인 학풍으로 유명했는데, 패시브 투자의 선구자들 중 해리 마코위츠는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유진 파머는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적을 두고 있었다.

시장의 전능함을 투자의 영역에서 개척했던 마코위츠와 샤프, 파마는 모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지만, 이들의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다. 수많은 종목들로 이뤄진 주가지수를 제대로 복제하기 위해서는 컴퓨팅 기술의 진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패시브 투자는 케인즈 경제학의 권위가 추락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 초부터 구체적인 투자 방법론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1971년 웰스파고 은행의 괴짜 수학자들은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를 만들어냈다.

패시브 투자의 출발점이었지만, 대중적 반향이 크지는 않았다. 패시브 투자는 뱅가드 그룹의 성과로 인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패시브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보글이 설립한 뱅가드가 S&P500지수를 추종하는 '뱅가드500 인덱스 펀드'를 1975년에 출시하면서 패시브 투자는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덱스를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는 ETF(상장지수펀드)가 1992년 스테이트스트릿 은행과 아메리카 증권거래소의 협업으로 출시돼 오늘날까지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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