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해 텔아비브에서 열린 미국·이스라엘 정상회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을 막지 못한 책임론에 직면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 중 그에게 '후임 문제'를 거론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보좌진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 같은 분위기를 지난달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달하기까지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매체는 "바이든은 네타냐후에게 종국에는 자리를 물려받을 후임자와 나눌 교훈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언하기까지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장기전이 될 하마스와의 전쟁이 네타냐후 총리가 아닌 다른 지도자가 이끄는 체제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긴 발언이라고 폴리티코는 풀이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참여한 백악관 회의에서도 네타냐후 총리의 얼마 남지 않은 정치적 '유통기간'이 주제로 올랐다는 건데 백악관과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보도를 부인했습니다.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네타냐후 총리의 미래가 대통령에 의해 논의된 적이 없고, 논의되고 있지도 않다. 우리의 초점은 당면한 위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당국자는 성명을 내고 "최근 몇 주 사이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간에 이뤄진 대화에서 이 기사에서 보도된 내부 정치적 시나리오는 나온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권좌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미국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언급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당국자는 미 정부 내부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몇 개월 내에 물러나거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초기 공세가 끝날 때까지만 재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 무엇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총리에게 지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 정부 당국자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국정신뢰도 하락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천4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하마스의 기습을 예방하지 못한 안보 실패에 더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복 공습으로 악화한 국제여론도 네타냐후 총리의 권좌를 흔드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하마스와의 전쟁과 연계해 어느 순간 분쟁을 더욱 큰 규모로 확대하려 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의 본거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완전 점령하는 데 성공한 이후의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한편, 네타냐후 총리가 실각한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도 미리 생각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향후 이스라엘 정부의 전면에 설 가능성이 큰 인사들과도 접점을 확대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이스라엘 전시 내각에 참여 중인 제2야당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와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등이 포함된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폴리티코는 "네타냐후는 바이든 팀이 좋아하는 인사는 아니었다"며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오바마·바이든 행정부가 빚어낸 이란 핵 합의에는 신랄한 비판자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가 발발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면에선 네타냐후 정부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사법개편을 추진하는 등 '비민주적 경향'을 보인 것이 하마스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라는 가차 없는 평가를 내렸다고 이 매체는 전했습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이며, 과거에도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가 재기에 성공한 전력이 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