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는 제가 자주 찾는 단골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미슐랭 별을 받은 프랑스 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한국인 셰프가 한식과 프랑스식을 섞은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으로, 음식은 물론 맛있고, 셰프 가족과도 모두 친해서 틈만 나면 가는 곳입니다. 넓지 않은 식당 내부의 여러 자리 가운데 가장 안쪽에 있는 아늑한 자리가 특히 인기가 높습니다. 그래서 예약을 하면 보통 그 자리에 저희 일행을 앉혀주시곤 하는데, 지난 봄에 식당을 찾았을 때는 그 가장 안쪽 자리에 예약석이라는 표시와 함께 조명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시나 보네요? 무슨 촬영이 있나요?"
제 질문에 식당 매니저가 답했습니다.
"보름쯤 전에 ㅇㅇㅇ라는 인플루언서가 우리 식당에 와서 식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틱톡이랑 인스타그램이랑 여기저기 팔로워 다 합하면 수백만 명 되는 거물이니까 당연히 오시라고 했죠. 이 사람이 홍보해 줘서 확 뜬 식당도 많거든요."
인플루언서는 겉보기엔 수수한 차림의 아시아계 젊은 남성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이나 DSLR 카메라도 워낙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 촬영 장비도 평범해 보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와 장비처럼 음식을 촬영하고 맛을 본 뒤 묘사하며 녹화하는 과정도 조용조용 진행됐습니다. 인플루언서는 저희 일행과 비슷한 속도로 코스 요리를 먹었는데, 매번 진지한 표정으로 새로운 요리를 한 입 먹을 때마다 자세한 평을 남겼습니다.
혼자 와서 심심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일행 없이 혼자 왔으면서도 마치 수많은 팔로워에게 랜선 맛집 투어라도 해주듯 바쁘게 촬영을 이어갔습니다. 가끔 셰프가 직접 테이블에 가서 요리와 재료를 설명하기도 했고, 서버들도 특별히 주문을 받았는지 좀 더 신경 써서 음식을 서빙했습니다.
누구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식당에는 어딘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디저트까지 다 먹은 인플루언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산하고 셰프, 매니저, 서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떠났습니다. 저도 늘 그렇듯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고, 긴장이 풀린 듯한 매니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와, 전 그냥 음식 좀 찍고, 먹는 시늉만 하다가 갈 줄 알았는데, 정말 프로네요.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촬영하는 줄 몰랐어요. 인플루언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요!"
"그러게요. 저희 식당에 왔던 다른 인플루언서들 꽤 있는데, 오늘 저분은 특히 정성이 대단했네요. 맛있게 잘 먹고 만족한 것 같아 보이긴 하는데, 어떻게 영상이 잘 나올지는 또 지켜봐야죠."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다녀갔다고요? 그렇군요. 한 번씩 왔다가 좋은 리뷰 남겨주면 효과가 좀 있나요?"
"천차만별이에요. 식당 리뷰 진짜 잘해서 사람들이 믿고 보는 진짜 인플루언서도 있고, 아니면 별로 영향력도 없으면서 오히려 이것저것 잔뜩 요구만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어딜 가나 진짜가 잘 되고 성공하면, 그저 그런 짝퉁도 생겨나고 심하면 사기꾼들이 파리처럼 꼬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레스토랑 추천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보니,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에 정확히 그 이야기를 다룬 칼럼이 올라왔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요식업계에서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는 때로 식당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숨은 맛집을 발굴해 주는 고마운 인플루언서도 있지만,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공짜로 식사를 대접받는 것은 물론이고, 홍보비 명목으로 식당에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상 온갖 것에 순위를 매기는 세태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칼럼도 떠올랐고, 지난주에 쓴 우리가 알던 소셜미디어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될지 모른다는 글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소셜미디어는 이미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칼럼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주장 중 하나는 기성 언론과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식당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를 지적한 부분입니다. 즉 기성 언론은 숨은 맛집을 소개하는 기사든, 식당의 문제, 비위를 고발하는 기사든 식당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을 바탕에 깔고 있는데, 반대로 인플루언서들은 모든 걸 철저히 계산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물론 인플루언서 중에도 맛있는 음식, 좋은 식당을 발굴해 알리는 일에 보람을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대체로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뉴욕타임스 음식 비평가 피트 웰스
피트 웰스는 2012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수많은 식당의 후기, 음식에 관한 칼럼을 써왔습니다. 공개된 사진이 없지는 않으므로, '얼굴 없는 비평가'라고 부르기엔 다소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매번 가명을 써서 예약하고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게 적당히 변장하고 식당을 찾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비평을 쓰기 전에 보통 2~3차례 식당을 찾는데, 매번 다른 사람처럼 하고 나타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