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이나 미혼이나 똑같은 소득 요건
A 씨가 받으려는 대출은 '내집마련 디딤돌대출' 상품입니다. 연 2%대 저금리로 주택구입 자금을 빌려주는 정책금융 상품으로,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미혼은 연소득 6천만 원 이하면 최대 2억 원까지 대출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혼인 경우, 부부 합산 연소득이 7천만 원 이하여야만 대출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신혼부부가 아니거나 자녀가 2명 이상 있지 않으면 기혼이어도 6천만 원 이하여야 대출이 나옵니다. 부부는 2명인데, 1명인 미혼 소득요건과 같은 거죠. 연봉이 4천만 원인 사람은 미혼일 때 디딤돌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과 연봉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해 '기혼자'가 되면 소득 요건에 걸려 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1명+1명=2명' 인정 안 하는 사회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청년들에게 1.2%의 초저금리로 최대 1억 원까지 빌려주는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은 소득 요건이 더 비현실적입니다. 미혼은 3천5백만 원 이하, 기혼은 부부합산 5천만 원 이하만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9,620원이니, 1년 내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면 2천4백만 원 정도 받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가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부부 모두 수당 한 푼 받지 않고 최저임금만 받아야 신청할 수 있는 겁니다.
비현실적인 소득요건, 왜?
국토교통부는 재원이 한정돼 있어서 소득 요건을 완화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기금으로 디딤돌대출 같은 정책금융상품을 운용하는데, 기금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니 소득요건으로 신청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혼은 1명, 기혼은 1+1=2명인데, 1명과 2명의 소득요건이 비슷하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평균소득인 2명이 만나 맞벌이로 일하면 마치 고소득층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소득요건을 산정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최슬기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맞벌이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그렇게 고소득층 아닌데, 둘이 합치면 상당한 고소득인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출 상품에서) 상당 부분 배제되는 사례들도 발생하는 것 같고요. 결혼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생각한다면 재원 마련 부분은 더 큰 범위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 절망적인 성적표입니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주거 등 여러 환경이 안정되고 나서야 자녀계획을 세웁니다. 기혼보다 미혼이 더 유리한데, 누가 손들고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나설까요? 저출산 대책의 첫 단추는 '혼인 장려'입니다. 첫 관문에서부터 장벽을 마주해 혼인신고를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는 말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적어도 정부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한다면, 대출 소득요건을 현실적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