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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보수 언론이 맞닥뜨린 '시청자 편향' 문제

By 로스 두댓 (뉴욕타임스 칼럼)

스프 NYT(뉴욕타임스) 22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로스 두댓은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지난주 독자들에게 보낸 뉴스레터에 나는 학계와 언론의 지적 풍토에 관한 글을 실었다. 보수 언론의 문제는 일부러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 뉴스레터를 발송한 뒤 유거브(YouGov)가 새로운 언론 신뢰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제 보수 진영, 우파의 (지적) 풍토에 관해 이야기할 거리가 생겼다.

이번 조사 결과는 큰 틀에서 보면 별로 놀랍지 않다. 민주당 지지자는 공화당 지지자보다 언론을 더 신뢰한다. 이런 경향은 일부 색깔이 확실한 우파 방송—폭스 뉴스(Fox News)가 대표적이고, 뉴스맥스(Newsmax)나 OAN 등 규모가 작은 방송도 있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매체에 적용할 수 있다. 재밌는 건 민주당 지지자가 ABC, NBC, CNN, PBS 등 공중파와 주류 케이블 네트워크만 더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수 매체에 대한 신뢰도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더 높았다. 특히 사설 면에 보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이나 이론적으로는 교양 있는 우파 매체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에 대한 신뢰도도 공화당 지지자보다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더 높았다.

만약 응답자들이 설문지에 언급된 매체 가운데 상당수의 이름을 난생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그나마 인지도가 높은 기존 브랜드 이름에 비춰 어림짐작으로 매체의 성향을 가늠하고 이를 얼마나 신뢰한다고 답한 거라면 이번 결과는 더 심각한 위기의 징후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파 성향 매체 워싱턴 이그재미너(Washington Examiner)를 신뢰한다고 답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진짜 이 신문의 기사를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언론 전반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비평가 잭 셰이퍼는 그래서 이번 조사의 세세한 결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고 썼다. 예를 들어 블룸버그는 신뢰도에서 뉴스위크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 이를 두고 연연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실제로 뉴스위크를 더 많이 읽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한 번쯤 들어본 듯한 매체'로 뉴스위크가 블룸버그보다 더 많은 선택을 받았을 뿐이다. 인지도 문제라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조사 결과의 함의는 곱씹어 볼 만하다. 공화당 지지자는 폭스 뉴스나 그와 비슷한 언론만 보고 다른 매체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우파 성향의 응답자 상당수는 자기 같은 보수 성향 독자를 염두에 두고 만든 인쇄 매체의 이름마저 낯설다고 답했다.

위의 현상은 서로 동떨어졌지만, 공교롭게 상호 강화 작용을 일으키는 몇 가지 패턴으로 설명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리처드 하나니아가 2021년에 쓴 글의 제목에 잘 요약돼 있다. 글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진보는 글을 읽고, 보수는 TV를 본다"

물론 이는 사안을 너무 단순화한 명제이긴 하다. 특히 토크쇼 형태의 라디오 매체에서는 보수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고, 보수 라디오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은 어렵잖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또 자유주의(liberalism, 옮긴이: 미국 정치에 한해 보수와 대비하는 개념으로 아래부터는 '진보'로 통칭) 문화는 인쇄 매체를 통해 글을 읽는 데 강점이 있고, 보수주의는 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데 더 능하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특히 미국의 보수주의 문화는 뉴스와 예능을 결합한 인포테인먼트,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유명 진행자, 영웅과 악당을 나눠 세상을 바라보는 구도, 당파적인 지지와 날 선 비난을 위주로 한 TV 문화를 토대로 형성됐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불편부당한 뉴스를 본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가장 선명하게 진보 색채를 드러내는 MSNBC가 (주로 좌파) 시청자들에게 뉴스를 전하는 방식은 폭스 뉴스가 (주로 우파) 시청자들에게 뉴스를 전하는 방식과 같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하나니아가 다른 글에서 주장했듯 보수는 대체로 정치의 세부적인 쟁점, 논의에 관심이 덜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대개 정치 과정 전반을 상세히 풀어내는 정치 전문 매체의 독자 가운데는 보수적인 사람이 많지 않다.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접하는 언론 매체가 달라지는 건 상당 부분 계급의 분화로 설명된다. 즉 미국 사회의 정치, 이념 구도는 점점 더 포퓰리스트 대 실력주의자, 아니면 노동 계급이냐 전문직 종사자냐에 따라 선명히 나뉘고 있다. 그런데 공화당이 점점 더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되면서 지지자들이 대중매체를 소비하는 패턴이 공화당의 성향과 특징에 자연히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러나 이는 또다시 내가 전에 자주 언급했던 지적 풍토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즉 그동안 좀처럼 주류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외부인의 관점과 주장들이 점점 더 정치적 우파 사이에서 발언권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인의 관점이란 합리적인 의심과 건강한 회의론부터 피해망상에 가까운 억지 주장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진보 성향의 전문직 종사자들과 똑같은 뉴스를 보더라도 훨씬 더 깊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우파 시청자들 사이에서 잘나가는 방송인들은 그저 당파적인 발언을 통해 인기를 얻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미국 사회의 주류가 믿는 가치에 어떻게든 반기를 드는 생각과 주장을 쉬지 않고 공급하며 돈을 버는데, 그런 생각과 주장 중에는 외부인의 관점에 기댄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을 쓰면서 나는 우선 글렌 벡이나 터커 칼슨 같은 보수 논객을 떠올렸고, 이들처럼 명확히 분류하기는 좀 어렵지만, 갈수록 우경화된 색채를 드러내는 조 로건도 여기에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자연히 중도 좌파 성향만 남은 기존 주류 언론에서 받는 지적 압박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내가 지난주 뉴스레터에 썼듯, 진보 성향의 기관에서는 활동가든 학계의 연구자든 급진적인 주장을 펴면 다른 누구보다도 그 글을 읽는 독자와 대중이 먼저 주장을 검증하고 견제한다. 진보 진영에서는 보통 독자와 대중이 활동가나 학계의 오피니언 리더보다 중도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 기관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이념에 경도돼 정답을 정해놓고 연구 결과나 모든 주장을 그 정답에 억지로 꿰맞추려 하는 것이다. 이때 사실이 아니라 이념의 옳고 그름에 따라 주장의 급을 매기고 이를 자체적으로 검열하는 상황에 이르면, 그 기관은 특히 언론으로선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보수 진영에서는 사뭇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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