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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늦어서 미안"할 일 아니에요, 우선순위가 아니니까!

By 애덤 그랜트 (뉴욕타임스 칼럼)

뉴욕타임스
 
*애덤 그랜트는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에서 조직심리를 가르치며, 베스트셀러 책 "Think Again"의 저자다. 테드(TED) 팟캐스트 "Re:Thinking"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여름 어느 아침, 나는 동료에게 연설문 초안을 보내고 피드백을 부탁했다. 꽤 긴 글이었음에도 학회에 참석 중이던 동료는 그날 저녁에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늦어서 미안."이라는 사과와 함께.

"늦어서 미안"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메일을 보낸 당일은커녕 그 주 안에 답장을 받으리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동료는 사과해야 한다고 느꼈다.

사실 그런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내가 이메일함에서 작년에 받은 메일을 놓고 검색해 보니, "늦어서 미안"이라는 문구가 무려 547번이나 등장했다.

늦은 답장에 대해 사과하는 행위는 24시간 불을 켠 채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비현실적 기대 때문에 생겨난 증상이다. 다들 일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여가나 휴식을 위한 틈을 남겨두는 대신 끊임없이 소통 채널을 모니터링하면서 언제든 하던 것을 멈추고 일로 돌아갈 만반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다. 24시간 연락을 받는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의 달력에 삶을 맡긴다는 의미이자, 번아웃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깊은 사유보다는 얄팍한 반응을 유도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사람들이 일 처리를 잘 해내기보다는 무조건 서둘러 일을 끝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메일은 어떨까? 수신함에 들어있는 이메일 대부분은 보기보다 시급하지 않다.

로라 저지와 바네사 본스는 여러 가지 실험 끝에, 이메일 긴급성 편향이라는 현상을 짚어냈다. 사람들은 근무 시간 외에 이메일을 받았을 때 보낸 사람이 실제로 기대하는 것보다 더 빨리 답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수신자가 빨리 답해야 한다고 느낄수록 받는 스트레스는 커졌고 나아가 번아웃, 일과 삶의 불균형에 시달릴 확률도 높아졌다.

한편, 발신자가 수신자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줄 수 있는 간단한 방법도 밝혀졌다. 자신의 기대치를 이메일에 명시하는 것이다. "급한 일은 아니니까 시간 날 때 부탁한다"라는 문구를 넣는 것만으로도 빠른 답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이는 우리의 정신건강에만 좋은 것이 아니다. 팬데믹 기간 늘어난 재택근무 환경에서도 관리자가 의사소통할 때 답변을 원하는 시간 등 기대치를 명시하면 직원들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메일 답장을 빨리하는 것에 너무 높은 우선순위를 두면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메일로 하던 일이 중단되면 생각의 흐름이 깨지고, 진전에 방해가 되는 게 당연하다. 이메일에 당장 답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흐름을 유지하면서 나의 집중력을 내가 원하는 곳에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

한 네덜란드 금융회사는 일부 직원에게 이메일 알림 설정을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이메일에 지속적으로 답을 하는 대신 하루에 두세 번만 시간을 따로 내서 그동안 쌓인 메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라는 지침이었다. 그 결과 일부 직원들에게서 단기적으로 번아웃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 수신하는 메일이 많은 경우에는 특히 효과가 좋았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메일 묶음 처리가 직원 정신건강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냈다.

이메일 응답 방식을 바꾸는 것은 해결책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를 압박하는 '온디맨드(on-demand)' 라이프에 대한 기대치가 조정되려면 좀 더 광범위한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즉각적인 답장을 예의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 첫걸음이다. 나도 한때는 학생들이 보내는 모든 이메일에 24시간 내로 답장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누군가가 답장을 빨리 보내오면 내가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빠른 답장이 관심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코로나 시대에서 좋은 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사람들이 디지털 소통의 경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경계를 인정하게 된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메일 말미에 "제 근무 시간은 귀하의 근무 시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한 시간에 답장 부탁드립니다" 같은 인사말을 붙이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코로나가 물러갔다고 해서 기껏 만들어놓은 좋은 경계를 허물 필요는 없다. 그런 문화가 엔데믹에도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빠른 답장이 곧 관심이나 애정의 척도인 경우는 거의 없다. 답장 속도는 대부분 답을 하는 사람이 지금 얼마나 바쁜가에 달렸다. 이메일이나 문자, 전화에 답이 늦어지는 것은 상대가 너무 바쁘거나 무리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면, 지연의 단위는 '주'나 '달'이어야지, '일'이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답장 기한에 대한 자신의 기대치를 명시하지 않는 것 외에도 발신자가 고쳐야 할 나쁜 버릇이 있다. "수신함 내 끌어올림" 같은 문구를 달아서 같은 이메일을 다시 보내는 행위다. 고맙지만, 내가 받은 이메일 중에 먼저 읽어야 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런 문구와 함께 이메일을 재전송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나의 우선순위에서 더 아래로 밀려나게 된다.

우리는 상대방의 할 일 목록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나의 우선순위가 상대의 우선순위일 것이라고 넘겨짚어서도 안 된다. 답이 오지 않아서 정말 걱정이 된다면 "혹시 못 받았나 싶어서 다시 보낸다"는 말을 붙여 다시 보내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우선순위를 존중하는 태도다.

답장을 보내는 입장이라면, 죄책감은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연민을 가져보자. 우리 모두가 메시지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기한을 정해놓지도 않았는데 지각이란 있을 수 없다. 답장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면 어떤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 대신, "답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합리적인 인간인 상대방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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