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서는 연일 명승부가 나왔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남자 개인혼영 400m입니다. 개인혼영은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4종목을 한 선수가 차례로 하는 것으로 수영의 만능선수, 수영의 철인을 가리는 경기입니다.
장애를 가진 두 선수의 도전
이 경기에서 금메달을 다툴 막강 우승후보들은 세계 스포츠팬의 관심을 끌었는데요.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헝가리의 토마시 다르니, 그리고 미국의 데이비드 워튼이었습니다. 이 두 선수에게 이목이 집중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요. 바로 두 선수 모두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21살의 다르니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고, 19살의 워튼은 청각장애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습니다. 두 선수는 서울 올림픽 이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다르니는 헝가리 수영 선수로는 수십 년 만에 등장한 스타이고 워튼은 취약했던 미국의 개인혼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유망주이었지요. 두 선수의 빅매치는 개인의 영예뿐만 아니라 양국 수영의 자존심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토마시 다르니 vs. 데이비드 워튼
남은 종목은 평영과 자유형. 다르니는 두 종목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선두 자리를 결코 내주지 않았습니다. 경쟁자들을 2m 이상 따돌리며 우승을 눈앞에 두게 되었지요. 금메달이 떼놓은 당상이 되자 이제 초점은 다르니 자신이 갖고 있던 세계 신기록을 경신할 것인가에 모아졌습니다. 끝까지 역영한 다르니는 4분 14초 75로 맨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습니다. 자신의 기록을 0.67초 단축시킨 세계 신기록이었지요. 워튼은 2초 61 뒤진 2위로 들어왔습니다.
다르니는 조국 헝가리에 36년 만에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다르니는 400m에 이어 200m까지 우승하면서 남자 개인혼영 2종목을 모두 석권했습니다. 그리고 4년 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역시 2종목 금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이란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최고가 될 수 있다!
다르니가 시각 장애를 갖게 된 것은 15살 때인 1982년입니다. 눈싸움 도중에 친구가 던진 눈덩이에 왼쪽 눈을 맞아 크게 다치고 맙니다. 실명 위기에 놓인 다르니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선수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까지 몰렸지만, 헝가리에서는 그의 눈을 살릴 뾰족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눈 치료 기술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평가를 받는 나라는 서독이었습니다. 다르니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서독에서 7차례나 망막 수술을 받았습니다. 간신히 완전 실명은 면했지만 여전히 오른쪽 눈에 비하면 시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수술 여파로 훈련도 1년 이상 제대로 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1985년부터 1993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가까이 무적의 챔피언으로 군림했습니다. 과연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비결은 두 가지였습니다. 여기서 그냥 물러설 수 없다는 다르니 본인의 초인적인 의지가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기적의 콤비'로 불리는 토마시 코치의 힘이 컸습니다. 토마시 코치는 어린 제자를 따뜻하게 격려하면서도 지독한 스파르타 훈련을 주문했습니다. 스승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다르니는 물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매일 1만 2천m를 수영하는 지옥 훈련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1만 2천m는 50m 수영장을 120번 왕복하는 엄청난 거리입니다.
신화적인 수영스타 다르니에 밀려 비록 은메달에 그쳤지만 미국의 데이비드 워튼의 사연도 대단합니다. 다르니와 달리 워튼은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코치가 귀엣말로 해야 겨우 알아들을 정도였지요. 정상인 청력의 절반도 갖지 못한 워튼이었지만 그가 다르니와 함께 수영 개인 혼영의 역사를 이끌었던 선수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의 끈질긴 집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