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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교섭" 황정민과 "유령" 설경구의 인연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60

[씨네멘터리] "교섭" 황정민과 "유령" 설경구의 인연
다음 주에 세계 영화사의 걸작 "400번의 구타(1959)"와 "줄 앤 짐(1962)"이 재개봉한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영화다. 영화사상 영화를 가장 사랑했던 감독으로서 '영화광' 또는 '인간 시네마테끄'로 불렸던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은 생전에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을 쓰는 것이며,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을유문화사 "트뤼포" 평전 추천의 글에서 원문은 이와 좀 다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너무도 유명한 문장이라 널리 알려진 그대로 싣는다)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첫걸음이 같은 영화를 또 보는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감명 깊게 봤던 영화의 경우 두 번째 보면 오히려 감동이 식어버리기도 해서, 그냥 흐릿한 기억과 아련한 추억으로 묻어둘 때도 많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좋아한다. 요리하는 소리와 먹는 소리마저 나지막하지만 또렷이 들리는 조용한 시골집에서 김태리가 그 어떤 측면에서도 무해해 보이는 배추국을 끓여 먹는 장면이 종종 지치고 힘들 때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지 않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그 임순례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임순례 감독이, 이번 설 대목에 "교섭"을 들고 나.타.났.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 외교관과 국정원 직원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황정민과 현빈이 주연을 맡았고 순제작비 150억 원이 들어간 중대형 상업 영화다.

이 영화의 감독이 임순례 감독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이 임순례 감독이 그 임순례 감독 맞아요?"하고 관계자에게 물어봤을 정도다. 한국에서 여성 감독이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영화를 연출한 건 임순례 감독이 처음이라고 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10배 가까운 제작비를 들어갔기 때문에 임 감독도 부담이 없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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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님 영화라 무조건 한다고 했어요. 만약 시나리오가 별로였더라도 했을 겁니다. 임 감독님은 제가 20년 넘게 영화 배우로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끔 해주신 은인 같은 분입니다."

"교섭"의 주연을 맡은 황정민 배우가 기자간담회에 나와 말했다. 그의 출세작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다. 밤무대를 전전하는 3류 밴드 멤버들의 인생사를 그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전의 황정민은 대학로 무대에 서고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던 무명의 배우였다.

영화제작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도 잘 하는 걸로 알려진 '의리의 사나이' 황정민의 사람 됨됨이가 부각된 건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장에서였다. "너는 내 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황정민의 '밥상' 수상 소감은 유명하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 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이로부터 약 10년 뒤 황정민은 "국제시장(2014)"과 "베테랑(2015)"으로 2년 연속 천만 영화의 주연 배우로 성장했고, "교섭"에서는 자신을 데뷔 시켜 준 임순례 감독에게 규모가 큰 영화의 촬영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도움을 줄 정도의 '베테랑'이 됐다.

임순례 감독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감탄한 적이 많았죠. 저는 그 사이에 10편 이내의 영화를 찍었지만 황정민 배우는 거의 30~40편 찍었잖아요. 굉장히 다양한 영화들을 찍었기 때문에 영화 촬영에 대한 노하우나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더라구요. 또 미장센이나 영화에 집중하는 힘이 놀라워서 예전에 와이키키 할 때와 비교하면 정말 유치원생과 박사님의 차이라고 할 수 있죠."

영화 "교섭"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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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1일 밤을 기억한다. 나는 그날 지금은 폐관한 대학로의 학전 그린소극장에 있었다. 180석의 작은 극장 안에는 유인촌 당시 문화부 장관도 있었고, 임권택 감독 내외도 있었다. 그리고 황정민, 설경구 배우도 있었다. 15년 간 4000회 공연을 달려온 김민기의 소극장 뮤지컬 "지하철1호선"의 마지막 공연날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첫 설 연휴 대목에서 "교섭"과 맞붙은 영화 "유령"의 주인공은 설경구 배우다. "유령"은 1930년대 일제 치하의 경성에서 조선총독부에 침투한 항일조직의 스파이들의 활약과 이들을 색출해내려는 일제의 간계를 그린 추리액션물이다.

흥미롭게도 이번 설 극장가에서 자웅을 겨루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교섭"과 "유령"의 두 주인공이 "지하철1호선" 출신이다. 황정민과 설경구 두 배우 모두 "지하철1호선"으로 데뷔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2001년에는 나란히 "지하철1호선"을 공연했다.

1994년 "지하철1호선" 초연 때부터 극 중 안 해본 배역이 없을 정도로 활약했던 설경구는 2000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으로 단숨에 연기파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며 주연급으로 발돋움한다. 황정민이 '쌍천만 배우'라면, 설경구는 '첫 천만배우"(2003년 "실미도")다.

설경구 배우는 이번이 두 번째 "유령" 출연이다. 설경구는 1999년 최민수·정우성 주연의 한국 최초의 잠수함 영화 "유령"에서 조연을 맡았었다.

"유령"에서 설경구는 영화 후반 항일 조직 스파이 역을 맡은 이하늬와 한바탕 폭발적인 액션 씬을 펼친다. 이해영 감독은 이 씬을 남녀 대결이 아닌 동성 간의 대결처럼 그렸다. 이하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농담을 던졌다. "역도산을 어떻게 이겨요?"

설경구는 2004년 송해성 감독의 영화 "역도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었다. 전후 패망한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일본의 레슬링 영웅 '리끼도잔' 즉 역도산은 사실 조선인이었다. "유령"에서도 설경구는 조선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조선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준지를 연기한다. 감독들은 내면이 복잡한 인물을 연기하다가 어느 순간 그 내적 컴플렉스를 폭발시킬 수 있는 배우는 여전히 설경구가 최고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이해영 감독은 무라야마 준지가 자신의 속마음을 터뜨리는 강당 연설 장면을 컷을 나누어 찍고 편집하려고 설계했는데, 설경구 배우가 한 번만에 끝까지 내달린 대사와 연기에 압도돼 한 컷으로 다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 "유령(2023)"의 한 장면 (제공:CJ ENM)

"교섭"에서 탈레반을 상대로 한 한국 협상 대표를 맡은 황정민에게서도 전작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황정민은 2021년 "인질"에서 인질범들에게 납치된 스타배우 황정민 역을 본인이 연기했다. 비록 납치된 인질이지만, "인질"에서도 황정민은 끊임없이 인질범들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이들을 설득하거나 협상을 벌인다.

"교섭"에서는 특히 마지막 탈레반과 밀실 협상 장면에서 황정민 특유의 호소력 짙은 연기를 선보인다. 감독들은 인간미 넘치는 진정성 있는 역할은 '밥상론'의 이미지와 맞물려 관객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는 황정민을 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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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오피스 뚜껑을 열어보니 "교섭"이 "유령"에 적잖이 앞서가고 있다. "교섭"이 어딘지 모르게 코로나 기간 흥행에 성공했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모가디슈(2021)", "수리남"(2022. 드라마 시리즈)의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 편은 남성 스타 배우가 '투 톱으로' 나선 영화이고, 그 중 두 편은 황정민이 나오는 영화다. 그리고 로케이션이 이국적인 열대 지방이다. 관객들에게 흥행작 학습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이에 비해 "유령"은 낯설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물이라고 하긴 그렇고 추리 액션 장르물의 성격이 강하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유형이다. 영화 초중반까지는 최근작 "나이브스 아웃:글래스 어니언"이 생각나기도 했다. 특히 1차 예고편이 근사하게 나왔다.

이 두 글자 제목 영화들이 "밀수", "더문", "노량", 피랍" 등이 개봉할 2023년 한국 영화의 마수걸이 흥행을 책임지고 있다. 설경구과 황정민 두 배우가 이 두 영화를 이끌어 간다.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 배우다.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왔다.

"교섭"과 "유령"에서도 이들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ΟΟΟ이 ΟΟΟ한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묘하다. 'ΟΟΟ이 ΟΟΟ하는' 걸 기대하며 극장에 갔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가 있기를 바란다.
왼쪽부터 강기영, 박소담, 서현우 배우 (영화 "교섭", "유령" 포스터)

그러니 관객들은 "교섭"의 강기영과 "유령"의 서현우와 박소담도 눈여겨보시라. 충분히 주목할만한 연기를 펼쳐 보였다. 세 사람도 황정민과 설경구처럼 무대에서 배우를 시작했고 지금도 종종 무대에 선다. 강기영은 추민주 연출의 "나쁜자석(2009)"으로 데뷔했고, 서현우와 박소담은 한예종 연기과 출신으로 대학 때부터 지금도 꾸준히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다. 이들이 앞으로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갈 것이다.

P.S "교섭"이나 "유령"을 두 번 보지는 않을 생각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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