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방역정책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중국 내 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코로나 검사 대신 자유를" 같은 구호가 나왔지만 이제는 "중국에 황제는 필요 없다"며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로 바뀌고 있습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정치적 소요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추모 장소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
지난 26일 밤 중국 제1의 대도시라는 상하이의 '우루무치 거리'에서 희생자 추모집회가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우루무치 거리'라고 표기된 도로 표지판을 중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촛불이 켜지며 조화가 모였고, 추도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수백 명으로 불어난 군중들 사이에선 "코로나 검사 대신 자유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같은 구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 통제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집회가 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공산당 물러나라 시진핑 물러나라"는 구호까지 나온 겁니다.
그동안 중국 곳곳에서 봉쇄에 항의하는 주민 시위가 이어져 왔지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까지 등장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공개된 장소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구호를 외쳤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현재 중국에선 방역정책 위반 만으로도 구류 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하이 시위는 다음날인 27일 새벽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같은 날 베이징에 있는 유명 대학인 칭화대와 베이징대에서도 학생집회가 열리는 등 청두와 우한, 광저우, 난징 등 주요 대도시로 집회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당국, '우루무치 거리' 도로 표지판까지 철거
하지만 시민들은 "이제 도로 표지판 마저 두려운 모양"이라면서 오히려 조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루무치 거리' 도로 표지판 이미지가 SNS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도로 표지판 그림을 인쇄해 집회 현장에 붙이거나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목격됐습니다.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도로 표지판마저 떼어내 버린 당국의 대응이 오히려 이 도로 표지판을 항의의 상징으로 만든 셈입니다.
칭화대 학생집회에 등장한 '프리드만 방정식'
왜 칭화대 학생들이 이 방정식을 손에 들었는지, 본인들이 밝힌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여러 가지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해석 중 하나는 '발음' 입니다. 프리드만(Friedmann)의 발음이 'Free的 man'과 유사해 자유에 대한 요구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프리드만의 방정식이 우주 팽창과 관련된 공식인 만큼, 현재 중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더욱 퍼져나갈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해석이 정확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명문 칭화대 학생들답게 시위도 똑똑하게 해 재밌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칭화대 학생들이 프리드만 방정식을 들고 시위에 나선 이유에는 검열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방역정책에 대한 반대나 항의, 정권에 대한 비판이 들어간 문구를 들었다가는 공안당국에 적발돼 강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저 하얀 종이일 뿐입니다"
한 대학 게시판에는 '이것은 그냥 백지 한 장입니다'는 글을 인쇄해 붙인 학생도 나왔습니다. 이 종이에는 "나는 말한다, 말하려 한다, 말하고 있다"는 문구도 있지만 정작 무엇을 말하려는지 그 내용은 비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역설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 종신제와 황제는 필요 없다"…급해진 공안당국
시위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시민들도 막고, 현장에 있던 영국 BBC 특파원에게도 수갑을 채워 연행했습니다. 상하이의 '우루무치 거리' 표지판을 그냥 떼어내 버린 것처럼 그 어떤 불만의 표출 가능성도 차단하겠다는 공안 당국의 의지가 읽힙니다.
하지만 공안당국이 그만큼 당황하고 다급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의사 표현마저 검열과 처벌의 대상이 되자, 시위 현장에선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 민주화'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서부 쓰촨성 대도시 청두에선 "중국에 종신제는 필요 없다. 중국에 황제는 필요 없다"라고 외치는 영상까지 공개됐습니다.
국가주석 직위 3연임 제한을 없애고 시진핑 주석이 종신 집권할 수도 있는 길을 열어 놓은 현 정권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비판입니다.
SNS 통제 한다지만 시위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주요 관영매체는 오늘(28일)도 시위 관련 기사를 전혀 내놓지 않았지만 사설 형식을 통해 '정밀 방역'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봉쇄정책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으로 다수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트리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 요구까지 번진 시위 확산까지 막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