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에서는 각국이 중요 정치 이벤트를 치른 이후 그동안 자제해왔던 대외 정책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입장에서는 부정적 청구서들이 날아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며 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일본에선 아베 전 총리의 피격이라는 급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9월 27일 국장이 치러진 이후,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 역사 수정주의와 신국가주의 성향의 이른바 '아베이즘'이 다시 힘을 받게 된다면 한일 관계 개선은 요원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가을에 집중된 주변국의 국내 이벤트
북한의 제7차 핵 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은 지난 5, 6월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주요 이유로 중국의 제20차 당 대회를 꼽는다. 시진핑의 3연임이라는 중대 이벤트를 앞두고 동북아에 미국 등이 관여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중국이 북한의 핵 실험 자제를 설득해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7차 핵 실험은 "6 더하기 1이 아니다"(김성한 국가안보실장)는 말처럼 단순한 고도화를 넘어 본격적 무기화로 접어드는 것인 만큼,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 등의 관여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만큼 중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북한의 핵 실험을 만류해왔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20차 당 대회가 끝나면 빗장이 풀리게 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우려는 현실화되나
이런 전망 내지 우려가 한 번에 현실화되면 한국 외교는 말 그대로 퍼펙트 스톰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시간상 가장 마지막에 나올 것 같았던 우려가 가장 먼저 현실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움직임이다.
자국 우선주의 강화하는 미국…강제징용 해법 요구하는 일본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현금화 문제 주심이었던 김재형 전 대법관의 퇴임으로 일단 한일 관계 해결을 위한 외교적 시간은 벌었다. (강제징용 문제 현금화 문제는 당위적으로 빨리 해결되어야 할 문제지만, 외교적 해법 모색을 위한 시간 확보라는 측면에서의 평가다) 일본 측은 '강제징용 현금화' 문제의 해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해당 문제의 해결 또는 일단락 전에는 한일 정상회담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금화 문제의 사법적 해결이 유보되면서 한일 정상이 이번 달에 있을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면 최소 약식 회담, 소위 풀어사이드 회담은 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기로에 선 한국 외교에 드리운 먹구름
하지만, 한미일 공조 강화라는 북한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한일 공조 강화가 전제 되어야 한다. 미국을 매개로 한 한미일 공조 강화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될수록 북한 문제는 미국의 외교에서 더더욱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기에, 한미일 공조 강화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방안을 마련하라는 식으로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일 공조 강화와 유엔에서의 약식회담 가능성이 한국 정부에 달린 형국인데, 상황에 따라 한일 관계 복원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는 일본에 대한 일방적 짝사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남북, 한미, 한중, 한일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확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양자 문제 해결 방안 찾기도 만만치 않은데, 시험 날짜는 한데 모여 있는 형국이다. 누구도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 이번 가을 나아가 겨울에 한국 외교가 기로에 서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외교 문제 해법을 찾고 현실화시키기 위해선 국내의 지지 기반, 즉 대통령의 지지율이 단단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긍정 평가가 30%대에 머물고 있다는 건 한국 외교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