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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스트] "아이 걷게 해 줄 '기적의 약'…단 50일 차이로 제외됐습니다"

"20억 기적의 약, 600만 원으로!"…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

만 2세의 시완이는 희소 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어 혼자서 서지도, 앉을 수도 없습니다. 한 번만 맞으면 치료되는 약이 있지만 약값이 무려 20억 원에 달해 치료는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8월 1일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최대 약 600만 원 선에서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급여 대상에서 시완이는 제외되었습니다.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여기엔 너무나 가슴 아픈, 아이와 그 가족들에겐 잔인하기까지 한 '벽'이 있었습니다. 이 벽은 어떤 벽인지, 왜 이렇게 된 건지, 정말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 SBS 조동찬 의학전문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백인규 / 시완이 아버지 : 국민의 의견을 다 들어줘서 보험 등재가 됐는데 우리 아이만 지금 맞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지금 황당하고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20억짜리 약이 필요한 아이들

이 아이는 2020년 5월 10일에 태어났습니다. 돌이 되었을 때부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의 상태를 인터넷에서 다 검색을 해서 ‘이거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이것의 가장 최고 전문가인 서울대병원의 교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진단이 맞았고요.
 
치료를 받지 않으면 평생 못 움직일 뿐만 아니라 일찍 사망합니다. 척수성 근위축증도 유전자병입니다. 그런데 예측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더 미안하겠죠. 사실 아이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나는 정상이지만 나의 열성인 유전자 하나와 배우자의 열성인 유전자 하나, 이렇게 두 개가 합쳐져서 내 자식이 이렇게 되는 거니까요.
 

'기적의 약'이 나왔다! 그런데….

2021년, 아이가 돌이 지난 다음에 우리나라에 ‘기적의 약’이 들어왔어요. 들어왔는데 약값이 20억이에요. 양가 부모 집까지 도합 네 채를 다 팔고 트럭 기사인 장인어른이 본인의 트럭까지 팔겠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판 가격을 다 더해 봐도 20억이 안 되는 거예요.
 
올해 8월 1일 처음으로 보험 급여가 됐습니다. 20억 약값이 본인 부담금 600만 원만 내면 맞을 수 있는 약이 됐어요. 저는 보도자료를 통해서 '이제 해결됐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완이는 보험 급여를 받을 수가 없다. 물었어요. 왜요?
 
이 보험이 적용되는 것은 만 24개월 이하, 체중 13.5kg 이하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완이는 만 24개월에서 50일이 초과됐습니다. 50일이 초과된 것 때문에 아이는 치료를 못 받습니다. 또 다른 아이를 만났어요. 영서(가명)라는 아이는 23개월밖에 안 됐어요. 체중도 9kg에요. 당연히 이 약의 적용 대상자가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제외됐습니다. 이유를 물었어요.
 
여기서 잠깐 설명해드리면 척수성 근위축증은 4가지 형으로 나타납니다. 1형이 제일 심한 거고요. 2형이 그다음 심한 거고 3형, 4형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보험 적용은 가장 상태가 나쁜 1형에만 적용하기로 했어요. 영서는 2형이었던 거예요.
 
그럼 우리나라는 왜 1형, 24개월 이하, 13.5kg 이하로 딱 그렇게 아주 범위를 좁혔느냐? 거기엔 이유가 있었어요. 최초 연구에서 통계적 유의성이 나타난 게 24개월 이하 그리고 13.5kg 이하의 1형 어린이들뿐이었어요.
 
그런데 후속 연구들이 나옵니다. 5세까지 치료 효과가 입증됐어요. 더 체중이 높은 아이들에게도 기존 약보다 훨씬 효과가 높고요. 2형의 어린이들도 치료 효과가 나왔어요. 2형인 아이들도 다른 기존 치료 약으로 좋아지긴 하지만 걸을 수 있는 효과까지 나타난 건 매우 드물었는데 20억짜리 약은 걷게 해요.

기존 약을 맞고 있는 시완이는 지금 혼자서 앉아있지 못해요.
 
[백인규 / 시완이 아버지 : 혼자 앉을 수가 없어요. 아이가 힘이 없어서 무너져버려요.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영서도 기존 치료제를 맞고 있어요. 6차례 맞았습니다. 넉 달마다 맞는데 주사를 맞은 직후에는 기어서 다섯 발자국까지 갔대요. 그런데 석 달째에는 딱 한 발자국 가다가 쓰러진대요. 그러니까 이 약이 그래도 없을 때는 고마웠는데 이렇게 한계가 보이고 걸을 수 있는 약이 나왔다는 데 약이 있는데 그게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면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겠죠.
 

재정상 무리일까?

이 아이들에게 20억 치료제를 주는 게 우리에게 정말로 무리한 일인지 한번 따져볼게요.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이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몇 명이 태어나는지 봤어요. 서양에서는 1만 명당 1명꼴로 알려졌지만 동양인은 좀 더 드물어요. 1만 5천 명이나 2만 명 중에서 1명꼴이에요. 우리나라 신생아가 작년에 26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면 한 해에 척수성 근위축증 환아가 17명 태어납니다. 최대 한 해에 17명입니다. 17명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20억 주사 놔주는 데 드는 비용이 340억 원입니다. 그런데 한 해에 감기 진료비로 쓰이는 돈이 1조 7천억입니다. 우리의 건보 재정 규모 340억 원으로 흔들릴 만한 그런 재정 규모가 아닙니다.
 
지금 기존 치료제로 주사 맞는 게 첫 달에는 네 번 맞고요. 그다음에 4개월마다 한 번, 1년에 세 번 맞는 거거든요. 이 주사 하나가 얼마냐면요. 1억 2천이에요. 보험 적용됩니다. 만약 6년을 맞는다면 20억짜리 약과 똑같은 금액이 들어가요. 물론 헛돈을 쓰면 안 되겠죠. 그런데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약 20억이 희망을 줄 수 있고 충분히 승부를 걸 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국민들께 저는 여쭙고 싶었어요. 17명의 어린이가 살고 걷게 하는 비용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호자들은 위축돼 있어요. 그리고 의외로 대단히 차분했어요. 울 힘도 없는 그런 상태였던 것 같고요. 또 20억을 지원해달라고 하기가 너무 미안한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나라는?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등은 시완이와 영서가 다 보험 적용이 됩니다. 의학적으로 사실은 50일 차이난다고 안 준다는 건 안 맞잖아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 20억짜리 주사를 맞은 아이가 딱 2명뿐입니다.
 
근데 전 세계에서 이 비싼 주사를 맞은 애가 2,300명이나 돼요. 도대체 뭐로 맞은 거야? 다 부자만 걸리는 거야? 그런 병도 아니거든요. 영국하고 호주는 우리나라보다 보험 적용 기준이 훨씬 더 까다로워요. 그런데 영국, 호주는 희소 난치병 환자들의 비싼 약값을 대신 구매해주는 재단이 있어요. 그런 기금이 있는 거예요. 영국 봤더니요. 그게 1조 700억 원이나 돼요.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는 보험 적용이 아주 엄격해도 환자들이 크게 절망할 이유는 안 돼요. 다른 대안들이 더 폭넓게 더 많은 예산이 딱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들은 기댈 게 현재로서는 보험 적용 급여밖에 없는 거예요.
 
이런 희소한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이런 나라처럼 우리도 특별한 기금을 마련해 두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분산돼서 국소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이참에 아예 통합해서 돈 없어서 좋은 치료를 못 받는 어린이들이 안 나오게 하는 그런 걸 좀 논의해 봤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획 : 김도균, 영상취재 : 김원배, 이승환, 구성 : 박규리, 편집 : 한만길, VJ : 신소영,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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