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야?] 불 꺼진 '세계의 공장'
중국의 31개 성과 직할시 중 20여 곳은 지난달 중순부터 공장에 전기 공급을 줄이거나 아예 끊고 '전기 배급'에 나섰다. 랴오닝성·헤이룽장성·지린성 '동북 3성'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산업용 전력뿐 아니라 가정용 전력 공급까지 단절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중국의 발전용 석탄 재고량은 2주간 버틸 정도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29일 중국 내 주요 발전소 6곳의 석탄 비축량이 1,131만 톤에 불과하며 이는 2주 정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탈화석연료 추세에 발맞추고 있지만, 여전히 산업의 70% 이상이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수력발전량도 올해 심각한 가뭄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왜 그런 건데?] 호주 혼내려던 중국, '되치기' 당했다
중국은 호주의 가장 큰 무역국으로 양국은 과거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호주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강화하는 동맹 네트워크의 핵심 국가다. 호주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발맞춰 화웨이 보이콧을 선언하고, 핵심 인프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등 중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왔다. 또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탄압 정책을 비난하고, 홍콩 보안법에 대해 규탄하는 성명을 내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여기에 지난해 4월 코로나19 원인이 중국에 있다며 조사를 촉구하면서, 호주와 중국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중국은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중국은 호주산 보리·와인·랍스터 등 13개 품목에 대해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내렸다. 문제는 석탄이 여기에 포함되면서부터다. 중국은 국영 에너지회사들과 제철소에 호주산 석탄 수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중국의 석탄 자급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채산성이 떨어지고 탄질이 좋지 않아 발전용 석탄은 수입에 의존해왔다. 중국은 해마다 3억 톤의 석탄을 수입하고 있는데 전체 수입량의 절반은 탄질이 우수한 호주산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부터 호주산 석탄 수입이 막혔다. 중국 정부는 호주의 광업이 타격을 받을 것을 기대했지만, 먼저 비명을 지르게 된 건 중국이었다.
중국내 석탄 부족이 극심해지자, 최근 중국 당국이 호주산 석탄을 슬그머니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말부터 중국 주요 항구에서 호주 화물선에서 석탄을 하역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현지 무역업자들은 중국 당국이 통관을 사실상 허락한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석탄 부족으로 발전소 운영이 중단되고 대규모 전력난으로 이어지자 궁지에 몰린 중국이 호주에 굴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조치일 뿐, 호주와의 통상 갈등은 중국 지도부가 세계 전략 차원에서 결정한 일인만큼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전력난을 보는 시각은 다르다. 중국 정부는 전력난이 호주산 석탄 수입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석탄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전력난이 수요 급증으로 인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 큰 이유는?] 석탄 쓰고 싶지만, '친환경 저탄소' 정책 때문에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8월 각 지방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칭하이, 닝샤, 광시, 광둥, 푸젠, 신장, 윈난, 산시, 장쑤 등 9개 성(省)급 지역은 GDP 대비 에너지 소모량이 오히려 늘어 1급 경고를 받았다.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10개 지역엔 2급 경고가 내려졌다. 당국은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나는 지역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를 했고, 지방 정부들은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전력 생산량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전력 공급 능력이 있는 지역까지 덩달아 전력난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친환경 저탄소 정책은 시진핑의 핵심 정책 중 하나가 됐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중국이 2030년 탄소 배출량 정점을 찍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탄소 중립이란,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적용되는 14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 기간 에너지 소비 총량을 13.5%, 탄소가스 배출량을 18%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석탄 사용을 줄이려는 이유는 또 있다. 시진핑 주석은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블루'를 공언했다. 친환경 저탄소 경제의 성과로 푸른 하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장쑤성에서는 지난 9월 전력 사용량이 많은 철강, 화학공업, 시멘트 등 업종에 대해 공장 가동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해외에서 베이징을 찾는 선수단과 관광객들에게 뿌연 하늘을 숨기기 위해 베이징 주변 모든 공장 문을 닫는 파격 조치를 내렸다.
[나아진 건 뭐야?] 한국의 가을 하늘이 맑아졌다
2019년부터 매년 9월 각 도시별 초미세먼지 농도를 비교해보면, 올해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이 확연하다.
올해 우리나라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유독 낮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국내 오염물질 배출이 줄고, 동풍이 주로 불고, 중국 대기 질이 개선된 '3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석탄을 덜 때니 한국으로 날아드는 미세먼지가 감소해서 우리나라 하늘이 깨끗해졌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일본 위성으로 관측한 중국의 에어로졸(대기 중 오염물질)이다. 2019년 9월과 지난해 9월에 비해 올해 9월 에어로졸 분포 정도가 줄었다.
[뭐가 문제야?] '발전' vs '친환경', 중국의 딜레마
중국의 주요 산업은 제조업이다. 제조업은 전력 사용량이 많다. 서비스산업이 활성화돼야 전력 사용을 줄일 수 있지만, 중국의 올 상반기 3차 산업 비중은 55.7%로 56.8%였던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었다. 현재 중국의 산업 구조 속에서는 경제 발전과 친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해?] 중국은 사재기를 시작했다
'전력 공급 총동원령'이 떨어지면서 천연가스, 국제 유가, 석탄 가격이 일제히 치솟았다. 정저우상품거래소에서 지난달 30일 기준 중국산 발전용 석탄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6.5% 급등해 t당 1,393.6위안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이자 올해 초 대비 2배가량 오른 것이다.
[영향은?] 세계로 번지는 충격파...첫 불똥은 인도로
인도는 석탄 화력발전소가 전체 에너지 공급의 약 66%를 차지할 정도로 석탄 의존도가 높다. 석탄 수요 급증으로 석탄 가격이 급등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인도는 수입량을 줄였다. 인도는 최근 비싼 외국 석탄 수입을 줄이고 국내 석탄 생산을 늘려보려고 했지만, 탄광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는 악재로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대규모 정전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디까지?] 중국 전력난에 떨고 있는 글로벌 시장
중국 전체 GDP의 30%를 차지하는 중국 광둥성과 장수성, 저장성에는 반도체와 각종 전자부품 및 소재 기업의 공장들이 모여있다. 타이완의 반도체 업체, 테슬라 부품과 아이폰 부품을 만드는 공장도 이곳에 있다. 이런 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니, 한국 미국 등 각국에선 부품이나 재료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완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고 물건값이 뛰는 현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아이폰13 시리즈 일부 모델의 경우 최소 한 달은 기다려야 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아이폰13 프로, 프로맥스 모델의 경우 제품을 수령까지 최대 4주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사정이 녹록지 않다. 국내 배터리 회사들의 4대 핵심 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50~70%에 달한다. 중국 배터리 소재 공장이 멈추면 한국 공장도 생산 차질을 빚게 된다. 반도체 핵심 소재인 니켈 제련 시설이 모여있는 장수성의 공장 가동률이 전력난 영향으로 70%까지 떨어졌다. 광둥성에서도 양극재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제작에 차질이 생기면서 감산에 들어갔다. 이들로부터 배터리 소재를 공급받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제롬 파월 미 연준(Fed) 의장은 이런 공급망 문제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파월 의장은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이 더 높고 길게 갈 것이라며 경계 수위를 크게 높인 것이다. 중국의 전력난은 거미줄처럼 얽힌 글로벌 공급망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건 또 뭐야?] 전 세계 위협하는 에너지 위기
유럽은 탄소 중립 정책에 따라 화력발전의 원료를 석탄이나 원유에서 천연가스로 대체해왔다.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석탄의 절반가량이어서 각광받고 있지만, 올 가을에는 물량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천연가스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10월 8일 기준 100만 BTU 기준 5.77달러였는데, 연초와 비교하면 2배 이상 급등한 수치다. 2014년 이후 가장 높았다.
유럽 천연가스 대란은 러시아가 수출을 줄인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유럽은 천연가스 사용량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틀어쥐고 유럽 정치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급격히 오른 국제 천연가스 가격 때문에 유럽 각국의 아우성이 심해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비라도 베풀 듯이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 대통령이 에너지 화상회의에서 유럽과 아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확대할 것이라고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 발언 이후 천연가스 가격은 10% 급락했다. 일단 유럽은 숨을 돌리긴 했지만, 혹한기를 앞두고 각국의 에너지 전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에너지 가격 플레이를 중동의 석유 수출국들도 따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우리는?] 한국에도 충격파... 에너지정책 차분하게 다시 짜야
지난해 국내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을 보면 석탄 35.6%, 원자력 29.0%, LNG(액화천연가스) 26.4%, 재생에너지 6.6%, 기타 1.4% 등이다. 화석연료가 여전히 60%를 넘는다. 원전과 석탄을 줄이는 대신 LNG로 대체하자는 것이 최근 몇 년간의 정책 방향이었지만,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재생에너지가 아직까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미 생존의 위기로 다가온 기후 변화는 부인할 수 없고 탄소 배출 감축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하지만 이번 전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에서 보듯, 탄소 저감으로 가는 길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에너지 문제는 국경을 가르듯 한 나라에 국한돼 벌어지는 일이 아니며, 전 세계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복잡계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논의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양극화돼서, 차분한 토론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정치 싸움은 뒤로 하고, 어떻게 해야 가급적 적은 비용으로 국민에게 충분한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여나갈 수 있을지 다시 정책을 검토해야 할 때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박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