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 샤키르의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 2020 F1 월드 챔피언십 시즌 15라운드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로맹 그로장(34세. 프랑스)이 몰던 머신이 방호벽에 충돌하며 커다란 화염과 함께 두 동강 났습니다.
그로장이 코너를 벗어나 직선 구간으로 진입한 뒤 속도를 끌어올려 추월하는 순간 다닐 크비야트(러시아)의 머신 왼쪽 앞바퀴에 오른쪽 뒷바퀴가 부딪치며 중심을 잃고 만 것입니다.
시속 220km의 스피드로 달리던 그로장의 머신은 방호벽에 그대로 처박히면서 커다란 화염과 함께 두 동강 났습니다.
그로장이 충돌할 때 받은 충격은 중력가속도의 53배(53G)에 달해, 체중 71㎏의 그로장은 충돌 순간 무려 3.8t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은 셈입니다.
구조대가 달려가 소화기로 진화하는 동안 사고의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그로장은 30여 초 동안 화염 속에 휩싸여 있다가 스스로 탈출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로장은 두 손등에 화상을 입은 것을 빼면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로장의 사고로 서킷에는 레드 플래그(적기)가 내려져 레이스가 한때 중단됐습니다.
BBC에 따르면 레이스 도중 머신이 두 동강 난 사고는 1991년 모나코 그랑프리 이후 29년 만이고, 머신에 불이 난 것은 1989년 산마리노 그랑프리 이후 처음입니다.
그로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적의 바탕에는 2018년부터 F1 머신에 적용된 '헤일로(halo) 헤드-프로텍션 디바이스 (head-protection device)' 덕분이라는 분석입니다.
2014년 10월 일본 그랑프리에서 쥘 비안키(프랑스)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서킷을 이탈해, 앞서 사고가 났던 머신을 이동시키려던 트랙터를 들이받은 사고가 났고, 비안키는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을 잃은 뒤 수술대에 올라야 했습니다.
이후 F1에서는 드라이버 보호 장치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지만 운전석이 외부로 노출되는 게 F1의 정신이라는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2018년부터 F1 머신에 운전석을 보호하는 롤 케이지 형태의 '헤일로'가 장착됐고, 이번 그로장의 사고에서 헤일로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입니다.
그로장은 병실에서 트위터에 영상을 올리고 웃는 얼굴로 "메시지를 보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린다. F1에 헤일로를 도입한 것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헤일로가 없었다면 이렇게 여러분 들에게 이야기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는 이미 올 시즌 챔피언을 확정한 루이스 해밀턴(35세. 영국)이 시즌 11번째 우승과 개인 통산 95승째를 기록했습니다.
(사진=AFP, 하스 F1팀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