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지난해부터 진행된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현직 국방부 최고 실세가 5.18의 네 번째 진상규명 작업을 오류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서 차관이 문제 삼는 부분은 자신이 언급된 특조위 보고서의 ‘왜곡, 은폐’ 부분입니다. 이 부분 정리를 맡은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서 차관의 주장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특조위 보고서 오류를 주장하는데 근거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김 교수와 서 차관은 88년 국회 청문회를 대비해 왜곡을 주도한 기관을 두고 주장이 엇갈립니다. 김 교수는 88년 5월 11일 만들어진 5.11 연구위원회를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반면 서 차관은 5.11 연구위가 아니라 88년 2월 만들어진 ‘육군 80대책위원회’와 5.11 연구위 이후 만들어진 ‘5.11 상설대책위’가 왜곡을 주도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있던 5.11 연구위는 실은 책임이 덜한데 김 교수가 보고서를 잘못 썼다는 취지입니다.
서 차관은 88년 제출된 상황일지에 적힌 ‘1차작성(85. )’이라는 부분을 문제 삼습니다. 85년에 작성된 자료이기 때문에 88년 5월 11일 생긴 5.11연구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5.11연구위가 없을 때 만들어진 문건을 5.11연구위의 자료라고 인용한 특조위 보고서는 잘못이라는 주장입니다.
김 교수는 "이 자료는 85년에 1차 작성됐지만, 88년에 다시 군에 제출된 자료"라고 반박합니다. 88년 5월 11일 이후와 89년까지, 즉 5.11연구위가 활동하던 시기에 군에 제출됐다는 기록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 군 기록을 근거로 '88년에 제출된 상황일지(5.11연구위원회 작성)'라고 보고서에 썼다는 주장입니다. 5.11연구위가 '조작'했다고 쓴 게 아니라 '제출 받았다'고 썼는데 서 차관 측이 이상한 해석을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서 차관 측은 이런 반박에 대해 “특별법에 따른 진상규명위원회가 전문성을 갖고 해석할 부분”이라며 더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 5.11연구위원회 VS 육군 80대책위원회
김 교수는 왜곡의 핵심 기관으로 5.11연구위를 꼽은 근거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5.11연구위의 주요 활동은 ‘장관 성명서 발표 준비, 국정조사 대비책 준비, 증언 대상 선정 협조 및 증언 요지 정리, 예상 질의 답변서 초안 작성’ 등으로 군 기록에 적혀 있는데 88년 청문회를 앞둔 군 차원의 대응을 총망라한 것이란 주장입니다.
육군 80대책위에 대한 군 기록도 근거로 제시합니다. 육군 80대책위는 ‘실무적 차원의 사전 준비 작업’으로 역할이 규정돼 5.11연구위에 인사를 파견하고 관련 내용을 보고한 기록이 있습니다. 5.11 연구위가 '몸통'이고 육군 80대책위는 '팔다리'일 뿐이란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국방부 산하의 5.11 연구위가 육군 산하의 80대책위를 지휘하는 구조라는 것은 군의 지휘계통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 차관 측은 이 반박에 대해서도 ‘5.11 연구위는 핵심 왜곡 기구가 아니다’라는 주장만 반복할 뿐 별다른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5.18 기념재단과 5월 단체는 서 차관과 김 교수의 주장의 진위를 가리고 있습니다. 서 차관이 "해명이 사실이 아닐 경우 책임을 지겠다"고 5.18 기념재단과 언론에 공언한 만큼 이 검증 작업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육군 80대책위든 5.11 연구위든 누가 더 잘못 했냐를 따지는 것은 5.18 진상규명 작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둘 다 왜곡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오히려 서 차관이 가장 바라는 일이 이런 지엽적인 논란에 빠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시간이 흐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음 취재파일에서는 특조위 해체 이후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 보고 국방부가 5.18 진상규명 작업을 주도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다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