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은 순제작비 11억, 홍보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총제작비 24억 원으로 만든 영화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가 50억원을 웃도는 것을 고려하면 저예산 중 저예산이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는 개봉 3일 만에 손익분기점(60만 명)을 돌파하고 개봉 주 주말에 이미 두 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4일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 156만 명. 이제 막 2018년 1/4분기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최고의 가성비 영화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곤지암'은 '내부자들'을 만든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가 2011년부터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2007년 영화 '기담'으로 한국 공포 영화의 신기원을 연 정범식 감독에게 곤지암 정신병원을 모티브로 한 페이크다큐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결과는 창대했다. 관객은 물론 영화 관계자도 놀라게 한 '곤지암'의 흥행 비결을 분석해봤다.
'곤지암'은 공포 체험의 성지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7인의 공포 체험단이 겪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을 그린 영화다.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하준은 친구 성훈, 승욱과 함께 곤지암 정신병원을 체험할 공포 원정대를 모집하고 지현, 아연, 샬롯(예원)이 호기롭게 합류한다.
영화는 곤지암 정신병원을 1979년 환자 42명의 집단 자살과 병원장의 실종 이후 섬뜩한 괴담이 넘치는 공포의 성지로 설정했다. 황당무계한 설정은 아니다. 실제 이 병원은 1996년 폐업한 이후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정범식 감독은 흥미로운 공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곤지암'을 만들었다.
주인공들은 공포 체험을 중계하는 인터넷 방송인으로 설정해 유튜브와 SNS에 익숙한 2030 관객의 친밀감을 높였다. 기획과 컨셉, 타겟팅이 주효했다.
투자배급사 한 관계자는 "영화의 만듦새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기획과 컨셉이 탁월했다고 본다. 파운드 푸티지는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익숙한 컨셉이지만 한국 공포 영화에서 제대로 차용한적 없었다. 한국판 '파라노말 액비티비', '블레어 위치'를 표방한 것이젊은 관객의 취향과 잘 맞아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7명의 주인공은 유튜브 중계를 위해 카메라를 하나씩 지참하고 곤지암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실제로 영화에 쓰인 90%가량의 촬영 분은 배우가 직접 찍었다. 여기에 영화 밖 시선이라 할 수 있는 카메라가 이들을 촬영한 화면을 번갈아 내보낸다.
이런 촬영 방식이 주는 효과는 생생한 현장감이다.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이 현장에 투입된 느낌을 선사했다. 특히 배우의 얼굴에 밀착된 카메라는 공포에 직면한 표정을 생생하게 잡으며 긴장감을 높였고, 병원의 각 공간은 원경으로 잡으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묘령의 존재에 대한 공포감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곤지암'에는 스타가 없고, 음악이 없고, 피가 적다. 3무 전략은 개봉 전만 해도 위험 요소였지만, 지금은 차별화된 흥행 요소가 됐다.
이 영화에는 얼굴을 보고 이름을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배우가 거의 없다. 그나마 최근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으로 얼굴을 알린 위하준과 SBS 드라마 '조작', '질투의 화신'으로 주목받은 박성훈이 눈에 익다. 여주인공인 박지현, 오아연, 문예원은 데뷔작이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생소한 얼굴이다.
스타 배우를 기용하지 못한 현실적 이유는 저예산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관객이 배우가 아닌 이야기와 상황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음악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가 불쾌한 효과음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강렬한 음악으로 공포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과는 차별화 된 전략이다. 이는 극영화 형식이 아닌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영화에도 절묘한 컨셉이었다.
영화가 공개되고 난 후 '그레이브 인카운터'(2011)와 유사성을 지적하는 관객들도 적잖았다. 폐쇄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촬영을 갔다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이야기의 골격 때문이었다.
'곤지암'이 기획 과정에서 참조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게다가 정범식 감독은 대표작 '기담'에서도 일제 강점기 서양식 병원을 배경 삼아 신선하고 품격있는 공포를 선사한 바 있다. 병원은 창작자가 애정하는 영화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마케팅도 성공적이었다. '곤지암'은 홍보 초기부터 'CNN 선정한 7대 흉가'를 강조했다. 곤지암 정신병원은 아는 사람만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사가 주목한 '공포 성지'라는 사실과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카피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의 홍보를 담당한 '하늘'의 최경미 실장은 "유튜브, SNS를 통해 콘텐츠를 공유하는 10∼20대 취향과 영화의 분위기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개봉 전 모니터 시사회를 통해서도 이들 세대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고, 그에 맞춰 SNS 등을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괴담 역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었다. 특히 과거 곤지암 정신병원에 공포 체험을 갔다가 이상한 일을 겪었다는 네티즌들의 후기가 SNS와 유뷰트 상에서 공유되며 "도대체 어떤 공간이길래?"라는 관객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곤지암 정신병원의 모델은 경기 광주 곤지암에 위치한 ‘남양신경정신병원'이다. 이 병원은 개인 사유지다. 1996년 폐업된 이래 사실상 방치돼있다. 이 공간이 영화적 소재로 쓰이면서 소유주가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소유주는 '곤지암'을 상대로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소유주 개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므로 소유주의 명예와 신용이 훼손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영화의 상영으로 부동산의 객관적 활용가치 자체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내렸다. 개봉 전 빚어진 법적 분쟁조차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호재로 작용했다.
'곤지암'의 인기를 깜짝 흥행이라고 보기엔 기획, 컨셉, 마케팅 등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SBS funE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