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이 작품마저 볼 수 없습니다. 소장자인 서 모씨가 2001년 3월 한 달간 집을 비운 사이 도둑맞은 것입니다. 이후 10여 년간 경찰의 수사가 이뤄졌지만 끝내 범인은 물론 국보의 행방이 오리무중입니다. 결국 지난 2010년 이 작품을 포함해 도난 문화재 29점을 인터폴에 국제 수배하는 선에서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겨졌습니다.
두 케이스에서 나타난 것처럼 개인이나 문중의 고문서들은 절도범들의 주요 타깃입니다. 특히 종가나 재실은 인적이 드문 농촌 산간에 있는데다 노인이 홀로 지키는 경우가 많아 훔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또 대부분 소장품이 비지정 문화재로 분류돼 있어서 장물을 처분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점도 작용합니다.
그러나 문화재 절도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사찰입니다. 되찾게 된 불교 문화재 이야기를 다룬 2014년 10월 SBS 8시 뉴스 보도입니다.
당시 이 문화재들을 감추고 있던 사람은 70대 사립 박물관장 권 모씨였습니다. 그의 수장고 안에서는 탱화와 불상, 복장 유물 등 41점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이 중 불화 11점은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털린 곳만 해도 선암사, 송광사, 수덕사, 대흥사를 비롯해 전국의 유명 사찰 20곳에 이르렀습니다. 조계종단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회수된 유물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백서까지 펴냈을 정도입니다.
문화재청 자료를 보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8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738건의 문화재 도난과 123건의 도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 유물은 2만 9천 725점으로, 거의 3만 점에 육박합니다. 여기엔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정기룡 장군의 유서, 백련사 철 아미타불좌상처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도 12점이나 포함돼 있습니다. 이 통계엔 피해 규모를 알 수 없는 도굴은 제외했기 때문에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하에서 장물의 소유자는 끊임없이 바뀝니다. 절도 행위 자체가 ‘나까마’의 주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나까마는 ‘물건’을 확보하면 최종 소장자를 찾아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유물의 일부를 훼손, 변형시키거나 낱개로 뜯어서 출처를 감춥니다. 또 업자들끼리 몇 차례 사고 팔면서 이른바 ‘세탁 작업’을 거치기도 합니다. 복잡한 단계를 거치다 보니 나중에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장물인지 몰랐다”고 발뺌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문화재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박병호 경사는 “과거엔 물건을 눈앞에 놓고 흥정하는 과정에서 간혹 정보가 새기도 했지만, 요즘은 카톡이나 문자, SNS를 통해 사진만으로도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적발이 더 어려워 졌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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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도난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뭘까요? 여기에도 ‘수요-공급 원칙’이 작용합니다. 불법 문화재의 주요 공급원이었던 도굴이 급격히 줄면서 도난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아직도 고분이나 해양 문화재 도굴이 종종 일어나고는 있지만,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는 게 전문가들 얘깁니다. 더 이상 도굴할 고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시는 것처럼 일제 강점기인 1910~30년대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마구잡이식 도굴이 이뤄졌습니다. 고분을 파헤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기도 했습니다. 유물들은 해방 후 일본으로 넘어가 지금은 ‘오구라 컬렉션’이니 뭐니 하는 고상한 이름으로 버젓이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도굴은 끊이질 않습니다. “어떻게 감히 조상 무덤을…”이라며 도굴을 꺼리던 사람들이 일본인들한테서 못된 짓을 배운 거죠. 실제로 도굴꾼이나 ‘나까마’의 상당수가 일제 때 일본인의 도굴 앞잡이 노릇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굴은 1960년대에 절정에 달했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 위에 엄청난 양의 자갈과 흙을 채운 신라 적석목곽분을 제외하면 전국 고분의 99%는 도굴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물 소장자들의 주먹구구식 관리는 더 문제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찰과 문중, 개인들이 최소한의 유물 목록조차 작성해 놓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관계자들은 한탄합니다. 도둑을 맞고도 구체적으로 어떤 유물, 몇 점이 없어졌는지를 파악하지 못해 쩔쩔맨다고 합니다. 또 상당수 소장자들이 도난 경보장치는커녕 CCTV조차 갖추지 않아 절도범이 자백한 뒤에야 피해 사실을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한상진 조사관은 “유물 목록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내용이 워낙 부실해 장물 판정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관리가 어려우면 아예 공공 박물관 등에 위탁 보관하거나 기증하시도록 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화재는 치부의 수단이어서도 안 되고, 특정 단체나 직계 후손의 전유물도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