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5개국을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방문 첫날인 7일 북한을 향해 "협상 테이블로 나와 우리와 합의를 이끄는 게 좋은 일"이라며 '협상'을 앞에 내세웠다.
또 "현재로써는 북한이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같은 언급은 그동안 '군사옵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강경 일변도로 치달았던 기존의 '벼랑 끝 전술'에서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어서 북핵·미사일 위기 해결의 새로운 돌파구 마련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외신들도 "전투적 수사에서 벗어난, 톤의 급격한 변화", "대북 문제 해결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보여줬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북핵 해법이 이번 아시아 순방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지척에 둔 한반도에서 어떤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앞서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순방 직전 '군사옵션'이 한미정상회담 의제가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예고해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결 정제된 언급을 한 가운데 '협상'에 방점을 뒀다.
김 위원장에게 붙였던 '꼬마 로켓맨'이라는 조롱적 별명도, '화염과 분노'와 같은 자극적 수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세계적인 위협이고 이에 대해선 전 세계적인 조치를 필요로 한다"면서 "단호하고 시급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으나 "다시는 이런 부분(군사옵션)을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전략을 통해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지금 카드를 다 보여드릴 수는 없다"면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북미 직접 대화'에 대해선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도착 후 첫 일정이었던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미군 기지를 찾은 자리에서도 한반도 긴장 사태와 관련해 "결국은 잘 풀릴 것"이라고 희망적 시각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등 방한 기간 쏟아낸 언급은 기존의 대북 강경 입장에서 선회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미국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눈에 띄게 다른 어조를 사용했다"면서 "많이 누그러졌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협상'을 거론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동안 줄기차게 대북 대화 무용론을 내놨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언급을 놓고 미국 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핵·미사일 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이 대북 제재와 압박은 추진하되 전쟁 위험은 배제해야 한다는 명확한 행로를 가져온 것은 고려했다는 것이다.
한국을 배제한 채 군사옵션을 가동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도 감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미국에 단순한 오랜 동맹국 그 이상"이라며 "미국과 한국의 중요한 안보 파트너십은 우리의 영속적인 동맹의 한 단면이다.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놓고 미국의 정책이 전면적으로 궤도수정을 한 것으로 판단하기는 섣부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최대한 외교적 압박을 가하되 북한이 끝내 비핵화를 거부할 경우 미국으로서도 남는 선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향후 움직임도 변수다.
북한이 두 달 가까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등 자제하고 있지만 혹여 추가 도발에 나서게 되면 한반도 기류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이 협상 카드를 고수할지는 현재로썬 속단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북핵·미사일과는 별개로 거센 통상압박을 예고했다.
험프리스 미군 기지에서 방한 일성으로 "미국 일자리를 만들러 여기에 왔다"고 한 데 이어 기자회견문에서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는 그렇게 좋은 협상은 아니다"라고 거듭 지적했다.
일본 방문 기간 미·일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무역 불균형을 비판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실리 추구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회견에서도 "한국 측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주문할 것"이라며 "이는 한국과의 무역 적자 감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