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김 전 원장이 특혜 채용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것은, 지난해 10월 20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국정감사에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금감원은 내부감사에 나섰다. 당시 김수일 부원장의 지시를 받고, 채용 문턱을 낮춘 걸로 지목된 이상구 당시 부원장보는 두 달 뒤 사표를 냈다. 해당 변호사 역시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다. 오직 김 전 부원장만이, 꿈쩍없이 거의 1년을 버텼다.
그저 버티기만 한 게 아니었다. 금감원의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은 지난 4월 7일 이들을 재판에 부쳤다. 김 전 원장은 이때부터 채용 비리를 저지른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인사 내규에 따라 금감원은 김 전 원장을 직무에서 배제했다. 그런데도, 매일 점심 저녁으로,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법인카드 사용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소비자보호 업무를 총괄하는 부원장에게 업무 용도로 지급된 카드였다.
노조가 직접 그를 찾아와 카드 사용을 만류하고, 총무국에 카드 회수를 요청한 뒤에야 그의 부당 지출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5월 26일까지, 휴일을 뺀 근무일 기준 30일 동안 이미 514만 원이 나간 뒤였다. 복집 같은 값비싼 한식집에서 저녁 식사로 24만 8천 원을 썼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저녁 한 끼에 28만 원을 지출했다. 갯장어, 생고기, 이자카야, 중식당, 쌈밥전문점, 횟집, 치킨배달점까지. 그가 점심, 저녁 식사비로 지출한 하루 평균 사용액은 17만 원이었다. 한 끼에 8만 5천 원씩, 법인카드를 긁었단 얘기다.
두 달 뒤 금감원은 새로운 전직 원장 출신 고문을 위촉했는데, 바로 직전에 퇴임한 최수현 본인이었다. 서울 경복궁 옆 통인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 집무실이 제공됐고, 비서도 배정됐다. 업무차량인 그랜저도 필요할 때마다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기사가 차를 몰았다. 지난해 10월 고문 임기마저 마친 그가 국민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금감원이 그의 계좌로 입금한 자문료는 9천만 원에 달한다. '셀프 위인설관(爲人設官)'이란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져, 금감원은 전직 원장을 고문으로 위촉하는 제도를 없앴다.
그가 은퇴 뒤에도 고액의 자문료를 받은 이유는 '금융감독업무에 대한 자문'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이학영 의원실을 통해 자문내역서 등 어떤 자문을 얼마나 받았는지 제출을 요구했다. 업무차량 역시, 배차와 주유 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돌아온 답은 황당했다. "주로 구두로 자문을 받았기에 자문 내역은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 업무용 차량 역시 사용자별 주유 내역 등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월 400만 원씩 자문료를 냈지만, 누가 얼마나 자문 받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고문이 기사 딸린 그랜저로 어디를 얼마나 다니든 기록해두지 않는다.'
본인에게 고액 자문료가 어떤 자문을 얼마나 해 준 대가였는지 전화로 물었다. 얼마간 즉답을 하지 않던 그는 "금감원 총무국에 문의해 달라."고 말했다. 최 전 원장에게 '금감원에선 구두 자문을 해줬다고 한다'고 알리자, 그는 곧장 "구두 자문을 해줬죠. 만나기도 하고."라고 했다. 거듭된 취재 요청에, 잠시 뜸을 들인 그는 고액 자문료를 받기 위한 '셀프 위인설관' 의혹을 두고, 이런 입장을 밝혔다. "자세한 걸 제가 말씀드리긴 어려움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약 5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최수현 전 원장은 '전임 고문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관례에 따랐을 뿐 특별히 특혜를 받은 건 아니란 얘기였다. 국정감사 질의자료에 대한 담당부서의 답변이나, 금감원 현직 간부들을 취재한 내용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금감원은 다른 기관처럼 한시적인 고문 제도를 뒀다가 없애길 반복해왔다. 1998년 이래 고문이란 명칭을 부여받은 인물은 모두 8명이다. 대개 금융구조조정이나 국제협력 등 관련 전문가를 유급으로 위촉했다. 전직 원장으로부터 금융 감독 자문을 받는다며 고문을 위촉한 건 2011년 4월이 처음이다. 하지만 보수를 준 일은 없는 걸로 확인됐다. '무보수 명예직'이었단 얘기다. 최수현 전 원장이 관례라고 말하는 고액 유급 고문은, 그가 처음 제도를 만들어 위촉한 자신의 전임자 단 한 사람뿐이다.
김수일에게 국회의원 아들을 뽑기 위해 채용 문턱을 낮추라고 청탁한 사람. 피고인의 행위를 하게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번 판결에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감원 안팎은 물론 금융계에선 재판부가 지목하는 사람을 한 사람으로 꼽는다. 채용비리 발생 전후로 1년 8개월 간 원장에 재직한, 최 전 원장이다.
통화가 된 김에, 그에게 채용비리를 지시했다는 의혹에 관한 입장을 물었다. "제가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지 않습니까." 완곡한 어조로 이렇게 묻는 것으로 그는 대답을 대신했다.
취재를 하면서, 인사 업무도 담당한 적 있는 금감원 간부에게 '셀프 위인설관'의 진짜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흔쾌하고 직설적이었다. "그건 특히 금감원장은 취업제한 때문에 3년 안에 아무 데도 못 가니까, 몇 년 다음 자리 찾을 때까지 챙겨주는 것뿐 인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