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을 ‘집밖으로 내모는 용기’는 스스로에 대한 또 다른 배려다.
살면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실감할 때가 많다. 특히 걷자고 마음먹은 다음부터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걷기를 포함해 몸을 움직이며 하는 일의 시작은, 일단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먼저임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와 걸음 떼놓기만 하면, 그 다음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던 적지 않은 경험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내 스스로 오르고 걸은 이런저런 산과 길들은 억지로(?) 몸을 집밖으로 몰아낸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집밖으로 내모는’ 용기는 삶을 다양하고, 또 건강하게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자구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작은 용기가 삶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시각을 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삶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시간 사용하기‘의 과정일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한 줌의 용기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시작이 되고, 그 시작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용기를 배려라 하지 않을 것인가.
길은 다시 산으로 이어지고, 길 위에서 만나는 행인들의 숫자도 늘어간다. 정겨운 웃음소리도 길 위에 가득하다. 길의 이정표는 우리가 개미허리 아치교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개미허리 아치교는 구봉도와 고깔섬을 이어주는 연도교이다. 도마뱀처럼 생긴 섬의 꼬리 부분이 고깔섬이다. 한낮의 도마뱀은 더위를 먹어서인지 축 늘어진 채로 바다 위에 누워 있었다.
▲ 대부도 해솔길 드론 영상 (드론 촬영 : 김세경 기자)
드론이 난다. 그리고 내가 걷는다. 김세경 기자의 성화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걷고 있는 중이다. 터벅터벅 볼품도 없는 걸음걸이가 아쉽다.^^
작고 길다란 섬의 등성이를 따라 길이 뻗어 있고, 길 위에 서면 양편으로 바다를 거느리며 걷는 뿌듯함이 있다.
고깔섬에서 바다에 가로막힌 길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대부도라는, 또 어쩌면 대부도 군도(群島)이기도 한 섬 무리의 끝이기 때문이다. 섬은 이곳에서 바다와 전선을 두고 휴전 중이다. 그러니 길 위의 사람들은 섬의 끄트머리에 서서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볼 뿐이다. 다만 그 아쉬움은 저물녘 바다 가득 채워지는 붉은 낙조에 위안을 얻는다.
낙조전망대로 가는 길 위에는 한 무리의 여자분들이 왁자지껄하다. 친구들과의 나들이에서 소녀 감성을 되찾기라도 했나보다. 인천의 가좌동에서 왔다는 동네 친구들은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드느라 뜨거운 햇살마저도 잊어버린 듯 즐겁고 또 즐겁다. 단체사진을 찍어달라는 주문에 갑작스레 내가 분주해진다.
전망대에는 빛이 퍼져나는 태양을 닮은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은 사진 찍는 이들의 단골 배경이 된다. 이런 저런 모임들의 단체사진에서 이 조형물은 누가 뭐래도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갈매기 한 마리가 조형물 위에 앉아 그들의 즐거움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곳 해솔길의 어느 지점에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미인송’이라는 이름을 얻어 지역의 명물이 된 것처럼 이름은 단순히 누구와 누구를 구별 짓는 의미 그 이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 대부도 해솔길 드론 영상 (드론 촬영 : 김세경 기자)
드론이 날자,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한다.
빨간 등대를 벗어난 드론이 하늘 위로 솟구친다. 고깔섬과 낙조전망대가 드론을 따라 달리고, 저 멀리 아득하던 풍경은 어느새 손에 잡힐 듯 지척의 그림이 된다. 전망대로 향하는 데크 위에는 사람들이 드론을 반기고 드론은 그들을 담는다. 새삼 많은 사람들에게 드론은 어느새 친숙한 영상 도구가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드론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이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할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드론이 날고, 손 흔드는 그들을 드론이 다시 담는다.
길은 썰물의 갯벌로 이어진다. 파도가 부딪고 헤집어놓은 바닷가는 바위투성이다. 고깔섬의 측면을 에둘러 사람들이 줄지어 걷는다. 그들이 바위 갯벌을 지나면 길은 해안 콘크리트길로 이어진다. 일명 바다소리길이다. 바다소리길은 종현 어촌체험마을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바다소리길을 포함한 대부도 해솔길 1코스는 <해안누리길>의 코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해솔길 1코스의 종점인 돈지섬으로 향한다. 돈지섬 역시 이름만 섬이다. ‘두멍큰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그야말로 산이다. 한가롭게 평지를 걷던 몸이 얕은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하지만 산길은 숲과 그늘이 있는지라 순간의 어려움만 이겨내면 또 발은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서문에서 자신이 기자였다는 사실이 도보여행의 걸림돌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불행은 내가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나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글을 써왔다. 그런데 도보여행자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은 있는 그대로 느낌과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꺼리’를 찾아 이성적 판단이라는 ‘강박’을 장착한 채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러니 걷고 있는 스스로에 집중하며 걷는 행위 속에서 온전히 얻어지는 경험과 감각에 충실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불평의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자로서의 시각이 아닌, 걷는 이로서의 단순함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짜겄노... 그 할 일이 지금 우리를 걷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진대, 감수하고 또 감당하여야 할 일이다. 스스로 자청해서 하는 일이니 더욱 그러하다. 사실 이유가 무엇이건 걷는 행위가 주는 특별한 ‘무엇’은 굳이 얻고자 하지 않아도 얻어지기도 한다. 또 달리 특별히 얻을 것이 무엇이던가. 땀 흘리며 걷는 스스로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다가 무언가 달리 얻어지는 게 있다면 그것은 덤일 뿐이다.
그렇게 어느 포도밭 앞에서 길은 끝나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해솔길은 무슨 길이었던가. 생각해 보면, 아마도 ‘동행의 길’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걷고 더불어 웃었으니 제대로 ‘동행’을 한 셈이고, 무엇보다 누군가 곁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곁에 있었던 그 대상이 후배기자인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말이다.
- 대중교통 : 서울지하철 4호선 안산역, 초지역, 중앙역, 오이도역 하차 후, 123번 버스(오전 5시 4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운행) 이용.
-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 : 대부도 방아머리 공영주차장(동춘서커스 공연장 옆), 대부도 바다향기 테마파크 주차장, 구봉도 공영주차장 등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