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곰의 이름은 KM-53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수컷이다. 지난 2015년 1월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 야생에서 자연 교미 방식으로 태어난 수컷 2마리 중 1마리다. 그해 10월 지리산에 방사됐다.
지리산 권역에 살던 이 반달곰은 지난해 9월 소식이 끊겼고, 10개월 뒤인 지난 6월 14일 지리산에서 80km가량 떨어진 백두대간 줄기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돼 생포됐다. 유전자 검사 결과 지리산 야생 곰인 KM-53으로 판명됐다. 이 곰의 형제는 지금도 지리산에 머물고 있다.
재 방사 뒤 이 곰은 1주일 간 뱀사골 근처에 머물며 살았다. 그 뒤 남원을 지나 함양과 거창을 거쳐 지난 20일 김천 수도산으로 이동했다. 이동 거리는 약 90km, 11개월 전 지리산을 떠나 수도산으로 올라온 경로를 다시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
발신기 추적결과 사람 밀집지역이나 민가를 피해 인적이 드문 시간에 산줄기를 따라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동 과정에서 만난 대전-통영 고속도로는 교각 아래 물이 얕은 하천을 통해 건너갔다. 또 광주-대구 고속도로 터널 위의 산길을 지나간 것으로 판단됐다.
이 곰은 수도산으로 이동한 뒤 4일 째인 지난 23일 오후 탐방로 근처에서 등산객에게 발견됐다. 지리산을 벗어나 백두대간으로 반달곰의 이동 경로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리산 권역 안에 머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것이다.
종복원기술원 직원들은 드럼통을 이어 만든 생포 트랩을 설치하고 곰을 유인하고 있다. 곰이 생각대로 다시 잡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번에 1차로 잡힌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학습 효과를 감안하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종복원 기술원은 밝혔다.
곰의 생포 성공여부를 떠나 자연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반달곰을 붙잡아 우리에 가둬 두려는 결정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적어도 환경부가 내세운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의 이유만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
환경부는 지난 2004년 반달곰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반달곰을 들여와 번식 후 지리산에 방사하는 작업이다. 지리산 권역에 반달곰 서식이 안정화 되면 백두대간을 따라 점차 서식지를 확대한다는 꿈도 있었다.
올무 등 밀렵 도구에 의해 반달곰이 폐사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47마리로 늘었다. 당초 목표치 50개체 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와중에 뜻하지도 않게 KM-53이 백두대간 이동 통로를 개척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지리산을 벗어나 반달곰이 수도산까지 서식지를 넓혀갔다는 것은 사실 복원작업의 성공으로 평가해야 맞다. 조사 결과 수도산에는 반달곰이 좋아하는 단풍취 등 취나물이 많고, 층층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산벚나무와 다래 등 먹이가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반달곰이 살기 좋은 곳이다.
안전이 걱정이라면 반달곰을 숲에서 쫓아낼게 아니라 반달곰 서식 사실을 적극 알려 사람과의 충돌 가능성을 줄이고, 지자체, 환경단체 등과 협력해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옳다.
산양과 여우, 삵. 담비처럼 반달곰도 마음 놓고 백두대간 숲에서 살 자유와 권리가 있다. 숲은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존 할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 자유를 함부로 빼앗아선 안 된다.
▶ [취재파일] 20일 만에 꺾인 반달곰의 꿈…"숲으로 보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