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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브리핑] 가수 윤형주가 기억하는 '육촌형 윤동주'

▷ 주영진/앵커: 시청자 여러분, 이 시 다들 한 번쯤은 암송해보셨죠? 윤동주 시인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저도 학창시절에 이 시 잘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또 얼마 전에 개봉됐던 영화 동주에서도 많은 시가 소개가 됐었죠. 저는 이런 시 대목들이 기억이 납니다.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또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새로운 길이라는 시구는 상당히 제 가슴에 와 닿았었는데요.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서시의 시인 윤동주 시인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여러분, 한국음악계의 포크음악 열풍을 일으킨 쎄시봉의 가수 윤형주 씨 잘 아시죠? 윤형주, 윤동주. 이름에서도 특별한 인연이 느껴집니다. 윤형주 씨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윤형주/가수: 반갑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그 자리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타를 또 들고 나오셨네요. 감사합니다.
 
▶ 윤형주/가수: 반갑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인연이라고 시청자분들께 말씀드렸는데 여러 차례 말씀하셨겠습니다만 윤동주 시인과 어떤 인연이십니까?
 
▶ 윤형주/가수: 육촌 형제니까 할아버지끼리 친형제고.
 
▷ 주영진/앵커: 아, 할아버지끼리는 친형제이시고.
 
▶ 윤형주/가수: 친형제고 저는 육촌 간이죠.
 
▷ 주영진/앵커: 그런데 영화 동주를 보다 보면 저도 영화를 정말 감명 깊게 봤는데 그 마지막 부분에 이제 세상을 떠난 다음인가요? 그 윤동주 시인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가는 장면도 나오고 그전에 면회하는 장면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 윤형주/가수: 거기에는 안 나왔고 면회에는 송몽규 면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윤동주 사후가 되겠고 거기에는 송몽규라는 고종사촌의 아버지하고 윤동주 아버지가 간 걸로 돼 있는데 원래는 저희 아버님이 가셨어요. 그래서 이준익 감독이 조금 송몽규를 영화로 드라마 타이즈하다 보니까 조금 사실과 달라진 건 좀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아마도 영화 속에서는 윤동주 씨는 워낙 국민들이 잘 알고 송몽규라고 하는 인물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까 그분을 좀 부각시키기 위해서 약간에 이렇게 변형을 가했다.
 
▶ 윤형주/가수: 맞습니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너무 내성적이고 영화적으로 다루기가 좀 그랬대요. 그래서 아주 성격이 상대적인 고종사촌 송몽규를 성격적으로 대조시키면서 하느라고 송몽규가 많이 알려지게 됐죠.
 
▷ 주영진/앵커: 윤형주 선생님은 그러면 성장하시면서 아버님으로부터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겠습니다.
 
▶ 윤형주/가수: 아버님은 윤동주를 데리고 일본을 가시기도 했고 모든 생활을 다 정해주고 하셨던. 그리고 또 용정에서는 윤동주가 자랄 때 선생님이기도 했어요, 삼촌이지만. 그래서 아버님이 들려준 윤동주는 아주 내성적이고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고향에 와도 시집을 들고 산에 올라가서 종일 시를 읽다가 내려오고 밥 먹을 때면 등장하고 그런 아주 유순하고 내성적인 그런 성격의 조카였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영화 쎄시봉에서 윤형주 선생님 나오는 대목을 보면 전축을 틀어서 노래를 들으시는 장면이 한번 나오죠. 노래를 하는 데 반대를 하셨는데 노래를 원래 클래식만 들으시다가 갑자기 윤형주 선생님 목소리가 나오니까 이렇게 미소를 띠던 그 장면이 기억이 나는데 그것도 사실입니까?
 
▶ 윤형주/가수: 아버님은 엄청 반대를 하셨죠. 그런데 이제 젊은 교수님들이 학장님, 그 아드님이 하는 음악이 나쁜 음악이 아닌데 왜 이렇게 반대하시냐고. 그래서 조금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셨는데 아마 그 부분이 아버님의 이제 제 노래를 트는 그 장면으로 이렇게 표현된 것 같아요.
 
▷ 주영진/앵커: 저희 제작진에서 오늘 윤형주 씨 나온다고 하니까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영상물을 한번 구성을 해봤어요.
 
▶ 윤형주/가수: 아, 그렇습니까?
 
▷ 주영진/앵커: 아주 짧게 구성돼 있으니까 영화 동주 장면도 집어넣고 해서 한번 같이 보신 다음에 이야기 계속해나가시죠.
 
▷ 주영진/앵커: 윤동주 시인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가.
 
▶ 윤형주/가수: 1917년 12월 30일이죠.
 
▷ 주영진/앵커: 거의 17년의 마지막 날 태어나셨고 세상을 떠나신 게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보지 못하고.
 
▶ 윤형주/가수: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나셨죠.
 
▷ 주영진/앵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궁금한 게 의구심은 갖고 있는데 아직 사실 확인이 안 된 듯한 게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 윤형주/가수: 해방 후에 그 일본 교도관이 양심선언을 했죠. 그리고 그때 밝혀진 것이 거기 한국에 많은 학생들이 또 구속돼 있었는데 구금돼 있었을 때 바닷물을 증유해서 만든 증류수를 영양제라고 속이고 매일 한 대씩 주사를 놨다고 하죠. 이름 모를 주사를 맞은 거죠. 그것이 바로 종전 직전에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 주영진/앵커: 지금 아마 윤동주 시인의 묘가 나오고 있는데.
 
▶ 윤형주/가수: 맞습니다. 용정에 있는,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기도 당연히 가보셨겠네요?
 
▶ 윤형주/가수: 1년에 한두 번 다녀옵니다.
 
▷ 주영진/앵커: 지금도 매년 한두 차례.
 
▶ 윤형주/가수: 비가 많이 오거나 그러면 쓸리기 때문에 또 잔디를 입히기 위해서도 가고요. 또 우리 아이들 데리고도 가고.
 
▷ 주영진/앵커: 세상을 1945년에 떠나셨으면 벌써 한 70년?
 
▶ 윤형주/가수: 72년.
 
▷ 주영진/앵커: 72년이 됐는데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좋아하고 가장 기억하는 시인. 그 힘,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 윤형주/가수: 저희는 일제 치하 속에서 언어까지 말살을 당했었잖아요. 이름까지 창씨개명해서 불렀던. 그때 유일하게 우리의 국어, 우리말을 가지고 끝까지 시를 썼던 시인이고 또 어느 날 아마 세상에 많은 지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말 자기가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앞에서도 그 일본 사람들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부장판사가 설득했대요. 너무 아까운 청년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거를 거부했던. 적어도 죽음이라는 것을 놓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할 수 있었던 그런 27살 된 청년의 삶이라는 것은 아마 요즘 좀 우리가 따르고 싶은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해서 어떤 그 순수라든가 또 그런 것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내면에 처한 저항. 그런 것들이 아마 요즘 다시 상기되는 것 아닌가.
 
▷ 주영진/앵커: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성장하면서 배우고 외우고 했을 것 같고 별 헤는 밤도 잘 알고 있고. 저희 때는 교과서에 자화상이라는 또 시가 있어서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도 나는데 저는 그 영화 동주 속에서 새롭게 접한 시가, 그러니까 쉽게 쓰여진 시라는 그 대목이 참 좋더라고요. 인생은 세상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져도 되는 걸까. 이런 대목이 있었는데.
 
▶ 윤형주/가수: 그렇습니다. 어떤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양심을 바라보는 뭔가 하여튼 솔직한 고뇌 같았던 것 같아요.
 
▷ 주영진/앵커: 시가 쉽게 쓰여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 윤형주/가수: 부끄러운 일이다.
 
▷ 주영진/앵커: 그 마음이 어떤지,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데 혹시 윤형주 씨께서는 6촌 형님인 윤동주 시인의 시 가운데 어떤 시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 윤형주/가수: 많은 시를 좋아하는데 특별히 별 헤는 밤이라는 시가 있어요.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이렇게 진행되는데 마지막에 보면 어머니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요.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밤을 세워오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 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살아생전에 시집 한 번 낸 적 없는 무명 시인이었거든요. 사후의 3년 뒤에야 시가 나왔는데 어려운 우리 역사 속에 제일 추운 겨울 같았던 그때 태어나서 살다가 떠난 시인 윤동주는 자기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어느 날 자기 묻힌 자리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라는 예언적인 그것을 죽음 앞에서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시가 우리한테 주는 게 참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세상을 떠날 텐데 과연 내가 잠든 곳에 생전에 보여줬던 그런 일들이 자랑처럼 풀처럼 솟아날 것이다. 그런 어떤 삶에 대해서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메시지가 있는 시 같아서 형님의 별 헤는 밤을 제가 좋아하죠.
 
▷ 주영진/앵커: 그 말씀 듣다 보니까 윤동주 시인의 시에는 늘 부끄럽다고 하는 표현이 참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일제치하라고 하는 속에서, 그 영화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같이 독립투쟁을 성봉에 서서 하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목숨을 부지해가고 나는 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런 상황에 대해 좀 부끄럽다고 생각하셨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 윤형주/가수: 그런데 심지어는 자기의 이름이 일본말로 불렸다는 것 자체도 그건 자기가 원해서 한 게 아니잖아요.
 
▷ 주영진/앵커: 일본 가서 공부를 했으니까요.
 
▶ 윤형주/가수: 그래서 매일 자기 내면을 보면서 자기의 어떤 성찰과 또 부끄러움과 어떤 성숙되지 못한 그런 것들에서 고뇌했던 청년 같아요.
 
▷ 주영진/앵커: 그런데 많은 우리 국민들이 기억하는 그 훌륭한 시인분들의 시는 사실 가곡이든 대중가요든 노래로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가령 박인환 씨 같은 경우에는 목마와 숙녀인가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남아 있네. 이게 노래로 알기 때문에 저도 기억을 하고 있거든요.
 
▶ 윤형주/가수: 향수도 그렇고.
 
▷ 주영진/앵커: 정주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면 육촌 형님의 시를 더군다나 가수이시고 또 아름다운 목소리, 청아한 목소리를 갖고 계시기로 유명하신데 노래로 만들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 윤형주/가수: 종종 했던 얘기인데 제가 그 작사, 작곡한 곡들이 많이 히트를 했을 때 아버님한테 가서 제가 그랬죠. 형님의 시를 작곡을 해서 부르면 시도 많이 알려지고 좋지 않겠습니까 했는데 아버님이 한참 침묵하신 후에 하셨던 말씀이 딱 한마디예요. 시도 노래다. 딱 그 말씀만 하고 마셨어요. 그러니까 시도 노래다. 그것도 선율이 있고 리듬이 있고 화음이 있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화음이 있고. 그러니까 네 그 잘난 작곡 실력 가지고 형님의 시를 건드리지 말라는 거죠. 그래서 서시라는 시의 작곡을 한 분들이 한 150명은 될 거예요. 그런데 어떤 노래도 우리가 기억하는 게 없잖아요.
 
▷ 주영진/앵커: 저도 기억 안 납니다.
 
▶ 윤형주/가수: 그러니까 그 시 이상의 어떤 곡이 없었다는 거고 그 시는 시 자체로 완전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오늘날까지 동주 형님 시에 지금 한 음 하나도 붙여본 일이 없어요.
 
▷ 주영진/앵커: 그러면 윤동주 시인,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인 올해를 맞아서 육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 씨가 특별히 계획하고 있을 법한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윤형주/가수: 그래서 오는 8월 1일에 이제 어른들 다 돌아가시니까 제가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됐어요. 그런데 그냥 지나치기가 좀 그렇고 해서 동주 형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 음악회, 콘서트를 8월 1일에 예술의 전당에서 하게 되는데 그냥 제가 노래하고 얘기하고만 하는 게 아니고 뭔가 좀 이렇게 새롭게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한 30분짜리 뮤지컬 이번에 초연되는 게 있는데 그 내용은 뭐냐 하면 동주 형님과 저의 대화를 가지고 만든 뮤지컬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 대화의 대상이 윤동주인 걸 모르고 쭉 진행되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 아, 동주 형님. 이렇게 끝나는. 그다음에 또 한 가지는 윤동주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평론할 수 있는 교수님 중에 김응교 교수라고 숙명여자대학교. 그분이 한 15분 강의를 해요, 공연 중에. 그러니까 뮤지컬과 또 윤동주에 대한 강의와 그다음에 제 노래와 또 윤동주에 대한 삶의 얘기를 들려주는 얘기들. 이런 것이 어우러진 좀 특별한 공연이 될 것 같아요.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8월 1일 예술의 전당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윤동주 시인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 공연 가서 보게 되면 정말 뜻깊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그리고 윤형주 선생님께서 직접 시에는 곡을 못 붙였지만 육촌 형님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 윤형주/가수: 해방되고 나서 중국 땅이 공산화가 되면서 44년 만에 제가 동주 형님 묘소 앞에 섰을 때, 무덤 앞에서 만든 노래.
 
▷ 주영진/앵커: 그러면 제가 시청자분들께 이렇게 기타 반주 계속해 주시죠. 제가 시청자분들께 마지막 인사드리고 나면 그때 우리 윤형주 선생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 2분 정도 들으면서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마무리 하겠습니다.
 
▶ 윤형주/가수: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시청자 여러분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가수 윤형주 씨가 육촌 형님 윤동주 시인을 기리고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 들으면서 여러분도 한번 윤동주 시인의 삶 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랐던 젊은이의 마음 한번 생각해 보시죠. 감사합니다.
 
▶ 윤형주/가수: 당신의 하늘은 무슨 빛이었기에. 당신의 바람은 어디로 불었기에. 당신의 별들은 무엇을 말했기에. 당신의 시들이 이처럼 숨을 쉬나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당신은 차라리 아름다운 영혼의 빛깔이여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던 당신은 차라리 아름다운 생명의 빛깔이어라. 당신의 땅 당신의 자리에는 하늘이 내리네. 별이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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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출처 :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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