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작품 등장 시점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일관되게 "내 자식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미술계 인사들은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놓으면서 의견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진짜냐 아니냐, 작품의 정체성을 더 헷갈리게 한 데에는 권춘식이란 인물이 큰 몫을 했다.
이런 권 씨는 1991년 '미인도' 사건이 처음 불거진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렸다"고 나섰고, 그렇게 '미인도'는 '위작'으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 이후 다시 '내가 그리지 않았다"고 말을 바꾼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렸다, 안 그렸다" 왔다 갔다 하는 인터뷰를 해왔다. 급기야 지난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말은 계속 바뀌었다. 3차례 조사를 받았던 권 씨는 1, 2차 조사 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린 위작"이라고 주장했지만, 3차 조사에서 "내가 그리지 않았다. 미인도는 진품이다"라는 진술을 내놓았다. 대체 왜 그는 자꾸 말을 바꾼 것일까?
권 씨는 지난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대여섯 점 그렸다고 한다. 대부분 화상들에게 주문을 받아 '선물용'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선물용'으로는 예쁜 그림이 인기가 있었기에, 주로 꽃과 나비가 있는 여인 그림을 그렸다. 당시에는 작가의 작품을 수록해 놓은 도록이 없었기 때문에 천 화백의 작품 사진으로 꾸민 달력을 보고 그렸다. 원작과 똑같이 그릴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이 그림 저 그림에서 가져온 소재들을 '짜깁기'해서 그린 적도 있다. 당시 그렸던 작품의 크기는 6~8호(가로 약 40~45cm, 세로 약 30~38cm) 정도였다. 천 화백의 그림을 그려주면, 1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당시 천 화백의 그림이 수백만 원 선이었으니, 10분의 1도 못 받은 셈이라고 한다.
권 씨가 처음 '미인도'를 본 건 국립현대미술관이 제작한 포스터를 통해서다. 실제 그림 크기보다 크게 제작된 포스터를 보고 천 화백은 '내가 그리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고, '무슨 그림이길래 그럴까'하고 봤다가 '아, 이거 내가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자와 꽃과 나비, 그동안 '모작'으로 그려온 소재가 다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렸다고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천 화백이 세상을 떠난 뒤 한동안 잠잠했었던 '미인도' 진위 문제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고,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 측과 미술업계 인사들의 강요와 회유도 이어졌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그린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청해 "천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그린 게 맞는 것 같았고 또다시 인터뷰를 통해 '위작' 주장을 했다.
검찰에서는 1, 2차 조사 때까지 작품 원본을 보지 못했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한 진술을 했고, DNA 검사를 위해 구강 세포를 채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린 '위작'"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3차 조사 때 검찰이 처음으로 '미인도' 원본을 보여주었다. 권 씨는 그림 원본을 보자마자 "아! 이건 너무 좋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포스터 인쇄본으로 봤을 때에는 '그림이 거칠고 별로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원본을 보니 "아주 환상적이고 채색 자체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고 한다. 권 씨는 "천 화백의 그림 중에서도 걸작"이라 말했다.
일단 '미인도'는 최상급 전주화선지를 썼다. 이 종이는 한 장 한 장 손으로 만들어낸 최상급 종이로,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만 쓰던 것이다. 또, 종이에 바로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종이 아래 나무판을 대고 종이를 세 겹 덧대어 썼다. 그리고 채색은 석채를 썼다. 당시 석채는 구하기 힘든 재료였다. 그런 석채를 두껍게 덧칠을 했다고 한다. 음영 부분도 가는 세필로 써서 '디테일'이 살아있었다고 한다. 일반 화선지에, 뭉뚝한 붓으로, 구하기 쉬운 분채로, 빠른 시간 안에 그리는 자신의 '모작'과는 '달라도 너무도 다른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검찰에서는 이런 권 씨의 진술을 수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에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미술계의 반응은 한 마디로 '다른 건 몰라도, 권 씨는 믿을 수 없다'. 이미 수차례 진술 번복을 거치면서 권 씨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권 씨는 줄기차게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견을 보이는 인사나 언론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