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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부, BMPS에 구제금융 투입 결정

이탈리아 정부가 23일 부실이 심각한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MPS)에 대한 구제금융 투입을 결정했다.

이탈리아 언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는 이날 긴급 각의를 소집해 BMPS에 유동성 보증과 자본 투입을 골자로 한 구제금융을 실시키로 의결했다.

정부의 구제금융은 JP모건이 주도했던 자구노력이 무산된 데 따른 것이다.

BMPS는 50억 유로를 목표로 자본 재확충을 추진했으나 기관과 개인투자자들로부터 25억 유로만을 조달할 수 있었을 뿐이라고 22일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가 BMPS 구제에 활용할 공적자금은 지난 21일 상하원에서 승인한 2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기금에서 충당된다.

이 기금은 BMPS를 포함해 부실 정도가 심한 몇몇 국내 은행을 구제하는 데 사용된다.

BMPS는 자산 기준으로 이탈리아 3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다.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재무장관은 각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BMPS에 지원될 공적자금 규모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유럽연합 금융감독당국이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확인된 요건을 맞추는 데는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규정에 따르면 납세자들에게 미칠 피해를 제한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투입할 경우에는 은행 주주와 후순위채 보유자들도 일부 손실을 부담하게 돼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러나 이 은행의 후순위채를 소액 보유하고 있는 4만 명의 개인들에 대해서는 피해를 보상해준다는 방침이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보상대책은 후순위채 보유자들에게 동등한 가치의 선순위채로 교환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에 대해 "오늘은 BMPS에게는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날"이라며 "이번 결정은 이 은행 예금자와 은행의 미래에 안도감을 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들은 구제금융이 BMPS를 둘러싼 불안감을 잠재우고 국내 금융기관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것으로 보고 있고, 업계에서도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LC매크로어드바이저스의 창업자이자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로렌초 코도뇨는 "이탈리아 은행들의 마침내 코너를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금융시장에서도 환영받을 것이고 경제에도 플러스가 된다는 것이 내 의견"이라고 말했다.

애버딘자산운용의 라훌 칼리아 펀드매니저는 소액 채권보유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밝히면서 "보상을 받지 못하면 현재의 정치권에 대한 국민 정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예금 인출 사태의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부터 BMPS의 수장으로 취임해 자체 자구안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해온 마르코 모렐리 BMPS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임직원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서 "정부 구제금융이 은행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면서도 "어쨌든 정부 개입은 우리로 하여금 부실 대출을 빠르게 정리하고, 좀 더 강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는 성명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의 은행 구제 방안이 EU 규정을 따르는지 면멸히 살피고 있다"면서도 "유동성과 자본 부족을 해결하면서도 EU 규정과 부합하는 은행 구제 방안에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이탈리아 정부의 은행 구제 방안에 사실상 반대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한편, BMPS는 르네상스 시기인 1472년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에 흑사병이 창궐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자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들이 빈자를 돕기 위해 설립, 지역 농민들에게 경작지를 빌려주거나 대출을 해주던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은행이다.

근세와 현대로 넘어오면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던 이 은행은 2007년 이탈리아 국내 은행인 방카 안톤베네타를 90억 유로에 인수하며 우니 크레디트, 인테사 산파올로에 이어 단숨에 자산 규모 면에서 이탈리아 3위 은행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적정가의 2배에 달하는 비싼 가격에 안톤베네타를 인수한 것은 몰락의 전주곡이 됐다.

무리한 인수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무분별한 파생 상품을 발행하고, 파생 상품 발행 대가로 메릴린치, JP모건 등에 과도한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방만한 경영과 경영진의 부패 등으로 이 은행의 재무 구조는 취약해졌고, 결국 전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정부로부터 2차례에 걸쳐 긴급 구제 자금을 받은 뒤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2014년부터 2차례 유상 증자를 통해 80억 유로의 자금을 확충하는 한편 자산 매각, 인원 감축 등의 자구 노력을 했으나 결국 막대한 부실 채권을 털지 못하며 생존 위기에 몰렸고, 지난 7월 유럽금융감독청이 역내 61개 은행을 상대로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꼴찌를 하며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후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며 전열을 재정비한 BMPS는 올해 말까지 50억 유로(약6조1천730억원) 규모의 자금 확충, 285억 유로(약 35조2천억원)에 달하는 부실 채권의 매각을 골자로 한 자구안을 내놓고 투자자를 찾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쳤으나 결국 노력이 무위로 그쳤다.

이 과정에서 지난 4일 이탈리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부결돼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물러난 것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킴으로써 BMPS의 회생 계획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인식된다.

BMPS에 10억 유로를 투자하려던 카타르 투자청이 이탈리아 국내 정치 불확실성을 이유로 발을 뺐고, 주축 투자자가 나서지 않자 일반 투자자들 역시 BMPS에 선뜻 돈을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BMPS는 22일 성명을 내고 "50억 유로의 자금을 확보할 수 없었다"며 "주축 투자자의 결여가 자금 확충 노력의 발목을 잡았다"고 시인했다.

한 영국계 금융 회사의 로마 지점에서 일하는 마르코 엘세르 투자전문가는 블룸버그 통신에 "BMPS는 이탈리아 통일, 파시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았지만 부실 경영과 경영진의 부패, 21세기의 정치를 극복하지 못했다"며 한탄했다.

일각에서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1933년 은행을 국유화한 이래 최대 규모의 은행 부문 공적 자금 투입으로 꼽히는 이번 조치로 인해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30%를 상회하는 이탈리아의 채무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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