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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흑인 여성' 그림…美서 대박 친 한국 청년

돈이 없어 그림을 못 그리던 청년이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의 한 갤러리 주인공은 이 까만 벽을 보고 바로 영감을 떠올렸습니다.

꼬박 하루 만에 작품을 완성했는데, 너무나 고혹적인 흑인 여성이 한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그림 실력이 대단합니다.

작가는 바로 28살에 심찬양 씨 그래피티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이 작품은 그의 삶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됐습니다. 그래피티 작가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LA 거리에서 작업할 기회도 얻게 됐습니다.

이번엔 10m 높이의 아주 큰 벽이었는데, 역시 한복을 입고 있는 흑인 여성을 그렸습니다. 단아하게 쪽진 옆모습 뒤로 꽃이 피어있습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상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습니다. "아름답다. 함께 작업하고 싶다."면서 수많은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그는 한국에서 10년 동안 활동했지만, 그래피티는 낙서라는 편견 속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재룟값이 비쌌기 때문에 새벽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스프레이를 사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던 지난 7월 "꿈을 위해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그래피티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무비자 체류 기간 90일을 다 채울 때까지 열심히 그림만 그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실력을 인정받아 그래피티 크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일당은 무려 50만 원, 한국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큰 금액이었습니다. 돈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고요.

입국을 앞두고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장 벽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 이 흑인 소녀를 그렸습니다. 어두운 공장 지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언론을 통해 한국에도 소식이 알려지면서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현재는 수많은 인터뷰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요, 그는 그래피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래도 요즘엔 많이 바뀐 것 같다면서 앞으로 그래피티의 매력을 한국에서 더 알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 미국에서 낙서하다 대박 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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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매주 사랑 고백을 받는 웹툰 작가가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찬사가 이어지는 걸까요? 너무 귀여운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는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가 문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기도 하고, 혼자 화장실 가는 게 무섭다는 친구를 따라 화장실에 가줬다가 기다리는 동안 더 무서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또 아무리 시끄러워도 혼자 깊은 꿀잠을 자는 아주 낙천적인 캐릭터입니다. 이 만화의 제목은 '나는 귀머거리다' 작가의 인생이 담긴 작품이었던 겁니다.

작가는 청각 장애인이어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청각 장애인들이 현실에서 겪는 이야기만 그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언어 사용을 귀여운 캐릭터와 재밌는 내용으로 바로잡기도 하고 장애인들은 자세한 어휘 정보가 없어 문장을 만드는 게 힘들다는 걸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이 웹툰을 만든 이수연 작가님 실제로 어떤 분일까요? 직접 만나봤습니다. 그녀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에는 큰 장애인 학교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 모두 장애에 대해 잘 이해했고, 또 다 친했습니다. 그런 편견 없는 분위기 속에 긍정적인 정체성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밝고 경쾌한 작품을 통해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웹툰 속에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그녀의 실제 모습이었겠죠.

200화를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이 완결되면, 이다음엔 장애인의 정체성과 외국의 장애 복지 상황에 대해서 다룰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 매주 독자에게 사랑 고백 받는 작가…'나는 귀머거리다' 웹툰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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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 청년이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겠다며 상해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을 죽이지 않느냐고 따지면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래는 누구보다도 일본인이 되길 원했다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사실, 그가 학교에서 배운 건 자랑스러운 '신 일본인'이 되라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엔 신 일본인이라는 건 없었습니다.

조선인이란 이유로 열심히 일해도 승진하지 못했고, 보수도 큰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일본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선 여성이 일본어를 못해서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을 보고도 그냥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본인으로 산 2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더 큰 슬픔만 안겨줬습니다. 얼마 동안 불행을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한 거였지만, 일본인 인 척했던 삶이 훨씬 더 괴로웠던 겁니다.

조선이 독립하지 않는 한 불평등은 계속될 거라 생각한 그는 다시 조선인으로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가서 한일애국단에 가입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1932년 1월, 도쿄 교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왕을 향해 그는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일왕은 살아남았고 그는 그해 10월 그는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분은 바로 84년 전에 순국한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입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나라를 위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니 함께 웃자고 말했습니다.

▶ "우리 기쁜 낯으로 사진을 찍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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