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을 앞두고 여러 논란도 있었지만 이 법이 시행돼야 한다는 데에는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듯합니다. 왜 이 법이 이토록 큰 논란이 됐고, 또 그런 논란에 대한 반발도 컸을까요? 우리 사회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된 듯합니다.
올해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반부패정상회의 코뮈니케의 첫 부분입니다. 부패 문제의 본질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존의 부패방지법이나 공직자 윤리법 같이 부패를 막자는 법안은 존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법이 존재한다고 부패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도 부패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부패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국제 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 인식 지수(CPI)가 그것입니다. 먼저 CPI를 바탕으로 한 세계 지도를 보겠습니다.
구체적인 지수를 보겠습니다. 2015년 현재 부패 인식 지수를 보면 한국은 56점으로 체코, 몰타와 함께 공동 37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위부터 볼까요? 덴마크가 91점으로 1위, 핀란드, 스웨덴, 뉴질랜드에 이어 네덜란드와 노르웨이가 공동 5위, 스위스, 싱가포르, 캐나다 순이고 독일, 룩셈부르크, 영국이 공동 10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누구나 선진국으로 인정하는 나라들입니다.
그럼 아시아권에서는 어떨까요? 싱가포르가 8위, 홍콩(16), 일본(18), 카타르(22), UAE(23). 부탄(27), 타이완(30),이스라엘(32)이 우리보다 앞에 있습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9번째입니다.
부패 인식 지수가 높은 나라가 반드시 선진국은 아니지만 선진국일 가능성은 훨씬 높습니다. 반면 지수가 가장 낮은 10개국 중 5개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에 포함된다고 TI는 지적했습니다. 지수가 낮은 나라는 차드와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이상 공동 147위), 콩고 공화국(146), 중앙아프리카 공화국(145), 방글라데시, 기니, 케냐, 라오스, 파푸아 뉴기니, 우간다가 공동 139위로 그 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2015년 조사에서는 빠졌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문제는 단순히 순위 뿐 아니라 지수 자체에도 있습니다. TI가 매년 점수화해서 지수를 발표하는 데, 한국은 2012년 56점, 2013년과 14년에는 55점, 15년에 56점을 받았습니다. 거의 변동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나마 순위를 보면 2012년 45위, 13년 46위, 14년 43위 보다는 조금 나아졌습니다.
물론 부패 인식 지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CPI는 그 나라 공직자들의 부패 정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설문 조사하는 방식입니다. 초기에는 0점-10점까지로 점수를 매겼지만 2012년부터는 0점-100점으로 방식을 바꿨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TI의 CPI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부패 관련 지수가 돼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5월 부패 관련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IMF는 전 세계의 뇌물 총액이 1조 5천억 달러에서 최대 2억 달러까지 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 액수는 대략 전 세계 GDP의 2%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IMF는 뇌물은 부패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패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선진국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부패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세계가 급속도로 글로벌한 환경에 직면하면서 건전한 거시경제학적 정책과 투명하고 책임있는 공적 기관의 존재, 또 재산과 투자자의 권리 보호가 외국인 직접 투자를 끌어들일 필요조건이 됐다는 것이 IMF의 설명입니다. 이후 IMF는 물론이고, OECD, EU, UN, 월드뱅크에서도 본격적으로 부패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93년에는 TI가 창립됐습니다.
우리는 2001년에야 부패방지법이 발효됐고, 지금은 국민권익위원회로 바뀌었지만 2001년에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김영란 법은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부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본격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