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경북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두 차례 강진은 시민들에게 '내 집과 사무실이 지진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공포를 안겼다.
근거가 없는 공포는 아니었다.
13일 전현희(더불어민주·강남을)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건축법상 내진설계를 해야 하는 건축물 143만9천549동 가운데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33%인 47만5천335동에 그친다.
전체 건축물(698만6천913동) 기준 내진율은 6.8%에 불과하다.
현행 건축법상 내진설계 의무대상은 '3층 또는 높이가 13m 이상인 건축물'과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 등이다.
하지만 이런 건축물에 모두 내진설계가 적용된 것은 아니다.
건축물이 착공될 당시 내진설계 의무대상이 아니었다면 이후 내진성능을 보강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0년 착공된 연면적 500㎡ 건축물은 내진설계가 안됐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건축법령으로는 건축물 연면적이 1천㎡를 넘어야 내진설계 의무대상에 해당했다.
한 민간 내진설계 전문가는 "건축법에 내진설계를 도입한 1988년부터 모든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하도록 규정했다면 지금쯤은 거의 모든 건축물에 내진설계가 적용된 상태였을 것"이라며 "내진설계 의무대상을 조금씩 늘리다 보니 현재 기준으로는 의무대상인데 정작 내진설계는 안된 건축물이 많다"고 말했다.
내진설계가 된 건축물이라도 무조건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축구조기준 '내진성능 목표' 등을 보면 특등급에 해당하는 건축물은 '한반도에서 2천400년만에 한 번 발생할 지진'이 건물에 주는 하중(지진하중)에도 붕괴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재현주기 2천400년 지진을 규모로 따지면 약 6.5 정도다.
특등급 건축물은 붕괴했을 때 인명·재산피해가 크고 건축물이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도 커서 중요도가 높은 건축물이다.
나머지 'Ⅰ 등급'과 'Ⅱ 등급' 건축물에는 통상 '재현주기 1천년' 또는 '재현주기 500년' 지진을 기준으로 내진설계가 적용된다.
대략 규모 5.5∼6.0의 지진에도 붕괴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정도다.
교량·터널·공항(활주로·관제탑·터미널 등)·댐 등 시설물에도 각각의 설계기준에 따라 규모 6.0∼6.5의 지진까지 견디도록 내진설계가 적용된다.
지진에 붕괴하면 재앙이 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규모 6.5∼7.0의 지진에도 문제가 없도록 내진설계를 적용한다.
이번에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규모가 국내 지진관측 역사상 가장 강력한 5.8로 통상적인 건축물·시설물 내진설계 기준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따라 내진설계 기준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이면 진앙과 가까운 오래된 건물들은 무너질 수 있을 정도"라면서 "현재의 내진 설계기준인 5.5∼6.5에 맞춰 지어진 건물이라도 노후화 정도나 디자인 등에 따라 지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원전 하부 지하 10km에서 규모 6.5∼7.0 이하의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해 원전을 설계한 것으로, 6.5 규모 이하의 지진에도 진원의 깊이가 지표면에 가까워지면 피해 규모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진의 규모가 작더라도 지진동은 커질 수 있다"면서 "이번 5.8 규모의 지진은 지하 깊은 곳에서 발생해 피해가 없었지만,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지표 인근에서 발생할 경우에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홍 교수는 한반도에서 규모 7.0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적으로 보면 7.0을 넘어서는 지진으로 평가되는 사례도 있다"면서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대가 활성단층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정밀한 지질 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고리·월성원전과 가까운 양산단층대는 부산에서 양산, 경주까지 단층이다.
다른 민간 전문가는 "건축물 등을 지을 때부터 내진설계를 적용해 내진성능을 확보할 때 비용이 나중에 보강공사로 내진성능을 확보할 때보다 적게 든다"면서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현재 내진설계 기준이 아직은 괜찮다는 반론도 있다.
규모 5.8과 6.0의 '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지진의 규모가 1.0 증가하려면 지진에너지는 약 32배 늘어야 하며 규모가 2.0 커지려면 지진에너지는 1천 배 증가해야 한다.
또 내진설계 기준을 초과한 지진이 발생한다고 곧바로 건축물이나 시설물이 붕괴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5월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마련해 추진해왔다.
앞으로 5년간 1조7천380억원을 투입해 2020년까지 내진율을 49.5%로 끌어올리는 한편, 핵심 기반시설은 조기에 내진성능을 보강하기로 했다.
또 내진보강을 추진하는 건축물에 대한 취득세·재산세 감면을 확대하고 건폐율·용적률을 완화해주는 인센티브도 부여할 계획이다.
아울러 건축법 시행령을 고쳐 '2층 이상' 건축물을 지을 때는 내진설계를 하도록 내진설계 의무대상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2045년까지는 내진율 100%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