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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 선물에 내 인생 걸수 없다'…김영란법에 추석경기 썰렁

'5만 원 선물에 내 인생 걸수 없다'…김영란법에 추석경기 썰렁
추석 명절 대목을 앞두고 선물용 지역 특산물은 얼마나 팔리고 있을까.

품목마다 소폭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예년보다 침체한 분위기다.

명절 단골 선물인 굴비나 배는 판매실적에서 지난해보다 뚜렷한 하락세를 보인다.

관가나 공기업 관계자들은 선물이란 단어만 나와도 손사래를 쳤다.

◇ 배·굴비 판매량 감소…5만 원 이상 사과·한과 "안 팔려"

추석 선물용 배와 굴비는 판매량이 20% 이상 줄었다.

영광굴비 상가에 따르면 명절 주문량이 예년 명절보다 20∼30%가량 떨어졌다.

굴비는 20마리가 든 6∼10만원짜리 선물세트가 주로 팔린다.

과거에는 10만원짜리가 절반가량이었는데 이번 추석 대목에는 6만원짜리 상품이 많이 팔린다.

김영란법이 이미 시행됐다고 잘못 알고 주문을 하지 않거나, 법 시행을 앞두고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굴비 구매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굴비를 선물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는 문의 전화도 잦다.

강철 영광굴비특품사업단장은 "추석이 끝나고 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실제로 판매에 영향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며 "법 취지에 맞추려면 굴비 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데 단가 상승으로 이마저도 어려운 형편이다"고 말했다.

대전 유성 배 농가도 예년보다 체감 주문량이 적어 울상이다.

아직 추석 연휴까지 일주일 넘게 남았지만, 지금까지만 보면 지난해보다 20%가량 준 것으로 유성배연합작목회 측은 보고 있다.

작목회 관계자는 "주문 자체도 소포장 위주로 들어온다"며 "예년에는 한 상자에 7.5㎏ 제품이 인기가 좋았는데, 올해는 5㎏ 제품을 찾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한 농민은 "배 8∼12개가 들어가는 7.5㎏짜리 상자를 미리 준비했다가 6∼7개를 넣을 수 있는 5㎏ 상자로 다시 포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석 특판을 시작한 지 1주일가량 지난 5일까지 전주농협 신성점은 한과 선물세트 약 500개(약 600만원 어치)를 팔았다.

한과세트는 주로 2∼3만원대 선물세트가 소비자 선택을 받았다.

5만원 이상 선물세트는 지난 24일 추석 상품 판매를 시작한 이후 1개도 팔리지 않았다.

마트 관계자는 "한과는 주로 가정에서 먹을 용도로 사기 때문에 선물용 판매는 드물다"며 "판매량은 지난해 현재와 비슷한 정도다"고 말했다.

하나로마트 전주점에서도 약 60세트(220만원어치)를 팔았지만 5만원 이상 선물세트는 수요가 없다.

사과 산지인 충남 예산에서는 5만원이 넘는 최상품 사과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대형마트 등이 납품 물량을 줄였다고 한다.

예산능금농협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해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고가 사과 선물세트 물량을 크게 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알이 굵은 최상품은 5㎏이 6만원 안팎에 거래되지만 보통 제품은 3만원대, 알이 잔 사과는 10㎏에 3만원 선이어서 김영란법 영향을 비켜갈 것으로 충북 충주 한 유통센터 관계자는 예상했다.

사과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여름 일소(日燒) 피해로 상품성이 떨어진 것이 많은 데다 멀쩡한 열매도 착색이 늦어져 유통 물량 자체가 확 줄었다.

충주 거점산지유통센터 심진현 과장은 "사과 유통은 이번 주가 절정이지만 생산량 감소로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날씨 요인으로 품질도 예년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주산 감귤 선물세트는 주문량에 변화가 없다.

가격이 대부분 5만원 이하다.

◇ "선물 주지도 받지도 않아요"…선물 꺼리는 공무원들

관공서와 공기업 관계자들은 벌써 선물 받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김봉대 울산시 울주군 총무계장은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선지 예년과 분위기가 다르다"며 "명절이지만 선물은 주고받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전했다.

울산 기초자치단체 한 간부도 "김영란법 시행 전이라 추석 선물을 주려는 사람이 법에 맞춘 가격대 선물을 할 수 있지만, 돈을 떠나서 아예 안 받는 게 속이 편할 것이다"고 했다.

울산에 있는 한 공기업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명절선물 반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선물을 되돌려 주거나 기증하는 문화가 정착됐고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만큼 선물 자체가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공무원 A(45)씨는 "올해는 직원들끼리 2만∼3만원짜리 선물을 주고받는 정도는 유지될 것 같다"며 "명절 전 지역 선후배나 가까운 사람끼리 만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왠지 조심스러워 모임도 안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경기도 한 지자체 간부 A(4급)씨는 "전에는 중앙부처 아는 사람에게 사과나 배 등을 선물했는데 올해는 서로 불편한 결과만 초래할까 봐 아예 안 하기로 했다"며 "선물이 오는 경우도 백화점에서 연락이 오면 거절한다. 상대방이 섭섭하다고 전화하면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지자체 간부 B(4급) 씨도 "햄이나 참치세트 등 3만원 이하 약소한 선물을 보낼 수도 없어 주는 것, 받는 것을 모두 중단했다"며 "명절선물을 주고받는 풍속이 지역경제가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는데 소비가 안 돼 타격을 받을까 걱정이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 백화점은 선방, 마트는 감소…소포 물량 감소

백화점업계 추석 경기는 불황 속에서 선방하는 정도다.

신세계 백화점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4일까지 판매실적이 전년보다 5.4%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주류 14.8%, 건강·차 17.3%, 축산 5.5%, 수산 4.8%, 농산 5.1% 늘었다.

추석 예약 판매량도 8.1% 신장했다.

그러나 한우, 굴비, 과일 등 고가 상품은 2.1% 신장에 그쳤다.

아직 기업들이 추석용 선물을 본격적으로 사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명절에는 기본적으로 지출을 줄이지 않는 일반 소비 패턴이 매출에 반영됐다"며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미리 선물을 주려는 경향도 매출 신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지난 7월 25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추석 선물세트를 사전 예약 판매한 결과 매출이 지난해보다 5% 감소했다고 밝혔다.

가격대별로 5만원 미만 상품 매출은 3.3% 올랐지만 5만원 이상 상품은 3.3% 줄었다.

추석 소포물량도 감소하는 추세였다.

경북지방우정청에 따르면 추석우편물 특별소통기간이 시작된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소포 물량은 접수 38만4천건, 배달 38만3천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9월 13일∼17일)보다 각각 20.4%, 4.6% 감소했다.

올해는 이 기간에 주말이 끼어 지난해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경북우정청은 설명했다.

경북우정청 관계자는 "초기 데이터라서 아직 선물 물량이 줄었는지 분석하기는 이르다"며 "추석이 지난해보다 12일 빨라 경북 북부지역 사과 등 수확이 더뎌 과일택배물량이 줄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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