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금융거래의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이뤄지면서 영업점에서 '모바일중심'으로 급변하는 모양새다.
금융거래 시 공인인증서를 설치하고 여러 단계에 걸쳐 본인 확인 작업을 거쳤던 모바일거래는 지문, 홍채 등 인증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안성과 편리성이 강화되는 추세다.
예컨대 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휴대전화 화면과 눈만 맞춰도 공인인증서 없이 내 계좌에 있는 금액을 타 계좌로 이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일은 또 있다.
은행권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투자 인공지능 '로보어드바이저'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컴퓨터 알고리즘이 고객 데이터와 금융 빅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투자 포트폴리오와 상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쉽게 말해 인공지능 컴퓨터가 고객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격변하고 있는 금융권의 현주소다.
◇ 지문, 홍채, 정맥…온몸으로 인증한다 "별도의 앱(애플리케이션)을 깔아야 해 처음에는 좀 불편한데, 막상 공인인증서를 입력 안 하니 별세계네요." 3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최근 지문인증을 통해 모바일뱅킹을 거래하면서 '신세계'를 맛봤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내 은행권에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핀테크 기술의 발전으로 인증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문을 넘어 홍채, 그리고 정맥인증 등 복제가 거의 불가능한 영역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 농협은행, KEB하나은행, 기업은행 등이 지문인증 방식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지문을 갖다 대고 등록하면 본인인증을 받을 수 있다.
기존 공인인증서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게 장점이다.
이체 서비스의 경우 입력 정보를 기재한 후 지문인증 과정을 거치면 끝난다.
비밀번호, 보안카드 등 여러 단계에 걸쳐 있던 것을 확 줄인 것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문인증을 거쳐 계좌이체, 상품가입, 대출신청 등 대부분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농협은행도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공인인증서 없이 지문인증만으로 조회, 이체, 금융상품 가입 등 모든 거래를 할 수 있다.
기업은행도 최근 지문인증 서비스를 도입했다.
홍채인증은 좀 더 정교하다.
인증 과정이 매우 복잡해 현재 기술로는 사실상 해킹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류 확률도 낮다.
얼굴 인식은 1천 번 중 한 번, 지문 인식은 1만 번 중 한 번꼴로 오류 확률이 있지만 홍채인식은 1조 번 중 한 번 정도 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해킹을 하려면 휴대전화를 우선 훔치고, 서비스 이용자의 홍채가 있어야 한다"며 "납치되지 않는 이상 현재 기술로는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로그인 후 생체인증 서비스 이용등록만 하면 돼 가입이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생체인증 정보가 사용자 스마트폰에만 저장되고 서버에는 인증결과 값을 저장하므로, 생체정보 등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면서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이런 탁월한 보안성과 편리성 덕택에 은행권이 홍채인증 기술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은 오는 19일 삼성 갤럭시노트 7 출시에 맞춰 홍채인증 서비스를 도입한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삼성페이'에 삼성패스의 본인인증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KEB하나은행은 공인인증서 업무를 홍채인증으로 완전히 대체하고, 우리은행은 공인인증서를 이용하되 비밀번호를 홍채인증 방식으로 바꾼다.
정맥 기술도 활용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공인인증서를 대체할 생체인증 수단으로 손바닥 정맥인증을 자동화기기(ATM)에 적용해 운영 중이다.
기계에 손가락이나 손바닥을 대면 적외선으로 정맥을 촬영, 보관 중인 정맥 영상 패턴과 비교해 본인임을 확인하는 기술로, 현재 위변조가 불가능한 기술로 알려졌다.
◇ 점점 스마트해지는 로봇 자산 분석가 고객의 자산관리(WM)가 은행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이 한창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퇴직연금 등 주로 WM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빠르고 정확하면서 저렴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런 특징 덕택에 소액 자산가들의 투자가 늘어나 전체 은행권이 운용하는 자산관리시장 규모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은행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자산운용 노하우가 증권사에 견줘 부족한 은행권으로서는 날로 괄목상대하는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일단 은행권은 ISA 상품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일임형에서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하고 있으며 우리은행은 신탁형 ISA에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했다.
또 조만간 일임형에도 관련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최근 일임형 ISA 상품을 출시한 KEB하나은행도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한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신한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 시범서비스인 'S로보 플러스'를 지난 4월 출시했으며 조만간 정식 버전도 내놓을 예정이다.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이미 로보어드바이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저금리·저성장 기조와 고령화 시대의 도래로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면서다.
농협은행은 최근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해 은퇴설계와 퇴직연금 자산운용 기능을 연계한 'NH로보-프로(NH Robo-Pro)'를 출시했다.
연령, 소득수준, 금융자산 등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은퇴설계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자산 배분안과 맞춤형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그러나 증권사와 은행이 출시한 각종 로보어드바이저 상품들은 아직 완전한 인공지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공지능이 실제 투자 자문과 운용을 직접 맡는 게 아니라 전문 인력의 판단을 한 번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주고 자산조정(리밸런싱) 등 사후관리까지 해주는 미국 등에서 이뤄지는 서비스에 비하면 아직 초기 단계인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법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가 직접 투자까지는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금융위의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러도 내년 정도는 되어야 로보어드바이저의 직접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민간 업체들과 손잡고 이달부터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 베드'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는 업계를 대표하는 몇몇 로보어드바이저를 샘플로 선정하고 이들의 알고리즘이 시장 예상치와 비슷한 결과물을 내는지, 투자자에 위험할 만한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확인하는 작업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