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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혼다 의원, 아베에 위안부 사죄 요구한 까닭은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현지시간) 장문의 기사를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의회 차원의 사과 촉구를 주도한 일본계 마이클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의 인생을 조명했다.

WP는 이날 4면에 게재한 '일본 정부의 사과 추진은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혼다 의원이 자신의 모국인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 저지른 위안부 인권 유린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죄할 것을 촉구하게 된 배경을 상세히 소개했다.

혼다 의원의 가족은 2차대전 미국 정부에 체포되어 콜로라도 주 동남부 캠프 아마치에 수용됐다.

일본의 1941년 진주만 기습 이듬해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지역의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토록 했다.

혼다 의원의 가족을 비롯해 잠재적인 간첩으로 간주된 일본인 11만2천여 명이 10여 곳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거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갇혀 있었다.

수용 당시 한 살이었던 혼다 의원은 너무 어려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후 그의 가족은 시카고에 정착했다.

군 정보부대에서 근무하던 그의 부친은 시카고에서 미군 정보장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혼다 의원은 캘리포니아로 가 고교와 대학을 마쳤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 서부 새너제이 시장인 노만 미네타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그는 역사에 눈뜨게 됐다.

역시 일본계인 미네타 시장도 과거 와이오밍캠프에 수용된 바 있는데 미네타 시장은 금전적 보상 외에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추진했다.

혼다 의원은 그를 옆에서 도왔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둬 1988년 다수당인 민주당과 공화당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2만 달러의 금전보상을 승인했다.

'근본적 불의' '비합리적인 고통' '정치 리더십의 실패' 등으로 시작하는 14쪽의 미국 정부 사과문도 나왔다.

혼다 의원은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역사는 아이러니했다.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감리위원회에서 근무하던 1990년대 초 어느 날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2차대전 일제 잔학상에 관한 전시회를 우연히 보게 됐다.

거기서 과거 제국주의 일본군이 행한 난징학살과 위안부 성노예 학대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됐고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추진하는 인생의 과업에 뛰어든 것이다.

WP는 "혼다 의원이 2차대전 당시 미군이 그의 가족을 다룬 일들에 대해 화해하기 위한 노력 등 개인적 순례를 거쳐 이 문제에 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한다면, 일본 정부는 성노예 희생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해야할까"라는 혼다 의원의 지난 29일 기자회견 발언을 소개했다.

혼다 의원은 아베 총리가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하지 않은 이날 기자회견을 해 "위안부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이 과거와 현재, 미래에 했고, 또 할 일에 모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혼다 의원은 아베 총리의 연설 당일 방미 중인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를 연설장인 연방 하원의원 본회의장에 초청했으며, 민주·공화의원들 25명이 아베 총리의 위안부 문제 사과를 촉구한 연판장 작성을 주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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