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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986년 차범근 vs 2015년 손흥민

[취재파일] 1986년 차범근 vs 2015년 손흥민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은 현재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최고 에이스로 평가됩니다. 이번 시즌 36경기에서 17골을 넣어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씨가 1986년에 작성한 19골에 2골 차로 접근했습니다. 손흥민은 오늘 밤(18일) 하노버전을 비롯해 모두 6경기를 남겨놓고 있는데 앞으로 3골을 추가하면 대선배를 능가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지금까지 게임당 0.47골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6경기에서 3골은 충분히 가능한 수치입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선수 차범근’의 활약은 어땠을까요? 현재 손흥민의 일거수일투족은 실시간으로 국내 팬에게 전달되지만 1986년 차범근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득점포를 연이어 가동해도 신문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TV중계는 물론 스포츠뉴스를 통해서도 활약상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과 이메일이 없었고 국제전화는 비용이 상당해 언론사들도 여간해서는 자주 통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각종 자료를 뒤진 결과 1986년 4월은 차범근 축구인생에서 최고의 달이었다는 게 확인됩니다. 1984-85시즌 차범근의 소속팀 레버쿠젠은 18개 팀 가운데 13위에 그쳤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85-86시즌에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6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1년 만에 순위가 대폭 상승한 결정적 이유는 ‘차붐’의 폭발적인 활약 덕분이었습니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34게임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해 17골을 터뜨렸고 컵 대회에서도 2골을 뽑았습니다.

차범근은 이 시즌에 분데스리가 득점랭킹 4위를 차지했습니다. 손흥민이 현재 득점랭킹 공동 8위인 점을 생각하면 활약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또 외국 선수로는 통산 최다 득점 신기록도 작성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덴마크 출신의 알란 시몬센(보루시아MG)이 7년 동안 76골을 넣었는데 차범근은 219게임에 출전해 85골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차범근이 만 33살 늦은 나이에 선수 생활의 화려한 꽃을 피우자 서독은 물론 외국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브라질, 불가리아 TV 방송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차범근
1986년 4월이 축구 인생의 정점이었다면 2달 뒤 6월은 가장 아쉬움이 남는 한 달이었습니다. 이 해 분데스리가는 멕시코 월드컵 때문에 한 달 가량 빠른 4월 26일에 리그 일정이 종료됐습니다.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한국 월드컵대표팀은 이때 미국 새너제이(산호세)에서 전지훈련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가 끝난 뒤 쉴 틈도 없이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5월 2일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한국 팀은 사상 초호화 멤버였습니다. 간판 스트라이커 차범근을 비롯해, 허정무, 최순호, 김종부, 김주성, 박창선, 조광래, 박경훈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6월 2일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3대 1로 진 것을 비롯해 세계와의  수준차를 절감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차범근도 조별리그 3게임에 모두 출전했지만 국민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동료들과 손발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차범근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1986년 4월까지 단 한 차례도 한국 대표팀 경기에 뛰지 않았습니다. 천하의 차범근이라 하더라도 고작 한 달간의 합동훈련과 몇 차례 친선경기만로는 무려 8년 가까운 A매치 공백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수비 위주의 플레이입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전반전을 보면 우리 팀은 상대의 막강한 실력을 의식해 차범근만 최전방 공격수로 전진 배치됐고 나머지 선수들은 주로 수비에 치중했습니다. 공격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차범근은 이렇다 할 슈팅 기회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또 세계적으로 이름난 선수가 사실상 차범근 1명이었기 때문에 상대 수비의 집중 견제가 이뤄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차범근이 유일하게 출전한 월드컵에서 1골도 넣지 못한 채 쓸쓸하게 짐을 싸야 했습니다.

차범근은 한국 축구가 배출한 최고 스타임에 틀림없습니다. 박지성, 홍명보도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게 축구인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그럼 손흥민은 어떻게 될까요?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두 선수 모두 걸출한 기량을 갖고 있지만 스타일이 다르다. 손흥민이 볼을 다루는 기술과 방향전환, 양발을 모두 사용하는 능력에서 차범근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반면 차범근은 피지컬적인 측면 즉 주력과 체력이 탁월하고 몸싸움과 돌파 능력에서 손흥민보다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손흥민
차범근 씨는 지난달 SBS와 인터뷰에서 “손흥민이 당연히 자신의 기록을 깨야 하고 더 훨씬 많은 업적을 남겼으면 좋겠다”라며 덕담을 했습니다. 올해 23살의 손흥민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이지만 그만큼 그가 짊어져야 할 짐도 만만치 않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더 확실히 보여줘야 할 뿐만 아니라 오는 6월 16일부터 열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선봉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차범근의 1986년은 환희와 아쉬움이 함께 교차한 그의 축구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해였습니다. 앞으로 10년, 아니면 20년 뒤 손흥민의 2015년은 어떻게 기억될지 자못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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