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던 야당이 보이콧 철회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가운데, 검찰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기록을 공개해달라는 유족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됩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고 박종철 씨의 형인 박종부 씨는 지난달 12일 서울중앙지검에 박종철 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고문 경찰관 등의 재판·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공개 요청 목록은 1987년 재판을 받은 고문 경찰관 조 모 씨 등 5명과 이들에게 불법 가혹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종용한 경찰 간부 유 모 씨 등 2명에 대한 기록 등입니다.
여기에는 당시 검사·판사·변호사·피의자 등이 공판에서 나눈 대화가 적힌 공판조서와 공소장, 재판의 증거로 채택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와 사건 관계자의 진술조서 등 수사기록이 포함됐습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이 사건 수사와 재판에 관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검찰은 박종부 씨에게 공판조서와 공소장, 증거목록을 나열한 리스트 등 일부 문서만 내줬습니다.
실제 고문 경찰관들을 신문한 내용이 생생히 기록된 피의자신문조서와 관계자의 설명이 담긴 진술조서는 공개목록에서 빠졌습니다.
수사팀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했던 과정과 박 후보자가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기록이 누락된 셈입니다.
검찰이 공개한 공판조서에는 '각종 시위 주도 혐의와 서클 관계 등에 관하여 신문을 하였나요', '박종철군의 가슴을 수회 때리고 발로 다리를 1회 찬 사실이 있나요' 등 피고인을 상대로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하는 수준의 박 후보자 발언이 담겨 있을 뿐이었습니다.
검찰은 '기록의 공개로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 등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거나 '기록의 공개에 대해 당해 소송 관계인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등 비공개 이유를 들었습니다.
해당 수사기록은 '검찰보존사무규칙'에 따라 '영구보존' 서류로 분류돼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종부 씨는 지난달 말 공개가 거부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추가로 내줄 것을 검찰에 요청했습니다.
박 씨 측은 "수사기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된 내용은 공판기록의 일부"라며 "이마저도 공개를 거부한 검찰의 처분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박 씨의 열람·등사신청 과정을 지원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기호 의원은 "검찰이 수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유죄로 확정 판결된 박종철 사건 기록을 유족에게조차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군색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박 후보자가 사건과 무관한 듯 주장하면서도 정작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수사기록을 공개해 박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명백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