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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류인간', 시네아스트가 만들어낸 상상력의 신세계

[리뷰] '조류인간', 시네아스트가 만들어낸 상상력의 신세계
새가 되기 위해 떠난 여자와 사라진 아내의 행방을 찾는 남편, 영화 '조류인간'(감독 신연식, 제작 루스이소니도스)은 15년의 세월을 오가며 두 인물의 발자취를 쫓는다. 

언뜻 보기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에 CG에 의존한 묘사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판타지가 아닌 현실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조류인간'은 충무로의 시네아스트(cineaste: 영화 작가)로 불리는 신연식 감독이 창조한 상상력의 신세계다. 흥미롭게도 그 뿌리는 '러시안 소설'(2012)이다. 감독의 전작인 '러시안 소설'은 문학과 영화가 공존하는 장대한 서사로 호평을 받은 수작. '조류인간'은 '러시안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소설가 신효가 극중에서 썼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유명한 소설가인 '정석'(김정석 분)은 작품활동도 중단한 채 사라진 아내(정한비 분)의 행방을 쫓는다. 그런 정석에게 어느날 묘령의 여인 '소연'(소이 분)이 나타나 길잡이가 돼주겠다고 제안한다.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소연이 의심스럽지만,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하던 정석은 그녀와의 동행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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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유사한 케이스로 가족, 연인을 잃은 실종자 가족을 만나게 된 정석은 모든 사건의 연결고리인 '은호'(성홍일 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은호를 쫓기 시작한 정석은 그를 만나기 위해 수상한 관문들을 통과해나가고,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아내를 둘러싼 믿을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사라진 아내를 찾는 남편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장르적으로 서스펜스나 스릴러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조류인간' 역시 아내의 행방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한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에 또 하나, 새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병렬구조로 이어진다.

긴 세월을 사이에 둔 두 남녀의 엇갈린 행보는 뜻밖의 진실이 고개를 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전반부가 은비의 여정 중심이라면 후반부는 정석과 소연의 행보에 포커스가 집중된다.

아내의 행방을 쫓던 정석은 긴 여정 속에서 아내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충격적인 진실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아내 그리고 자신을 떠나야만 했던 아내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또 정석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여정에 동행한 소연은 자신의 욕망과 태생적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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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류인간'은 정체성에 관한 영화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신연식 감독은 새가 되고자 한 여자를 애초에 진화론적 접근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촬영 직전 카메라 감독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접하고, 새가 되고자 하는 과정을 성전환 수술에 대입했다. 때문에 상상으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는 현실적인 설명과 묘사 속에서 설득력을 획득한다. 두 남녀가 교차하며 끌고가는 서사 구조 역시 '러시안 소설'보다는 단순해 이해가 쉽다.  

소재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없는 '뻔한' 상업영화가 넘쳐나는 충무로 환경에서 이런 소재의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소재와 주제에 대한 깊이있는 시선, 특수효과가 아닌 탄탄한 서사에 의해 구현된 상상력, 저예산(제작비 1억) 환경 아래에서 빚어낸 아름다운 영상 등은 '조류인간'의 빛나는 성과다. 2월 26일 개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12분.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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