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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댁의 경비원은 안녕하십니까?

[취재파일] 댁의 경비원은 안녕하십니까?
경비실에서 치킨을 먹었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욕설을 하고 행패를 부린 입주민, 경비원이 아파트 계단에서 소변을 보지 말라고 했다는 이유로 폭언을 퍼부었다는 입주민. 최근 주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와 화제가 된 목격담들입니다. 이 이야기들이 사실인지는 제가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것들이 회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와 비슷한 일들이 실제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주민이 관리비 내서 경비원들 월급 주는 건데 뭐가 문제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경비원의 열악한 실태를 다룬 기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댓글들입니다. 어찌 보면 입주민들은 광의의 ‘소비자’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이 ‘소비자의 권리’를 잘못 생각한다는 겁니다. 상대방을 하대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막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소비자의 권리가 아닙니다. 돈을 주고 상대방을 모욕할 수 있는,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까지 살 수는 없습니다. 권리의 정의와 범위를 혼동하는 것에 덧붙여, 우리는 경비원의 업무 영역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경비원의 업무는 법과 계약을 통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주니까 이것도 해야 된다’는 생각은 계약 위반입니다. 경비원들이 돈을 받고 해야 할 업무는 정해져 있습니다. 온갖 잡일과 입주민의 각종 민원 해결이 경비원의 주된 업무는 아닙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경비원은 이중으로 눈치를 봐야 합니다. 자신이 소속된 보안업체(위탁업체)와 아파트 입주민들. 고용의 주체가 둘인 셈입니다. 소위 시장에서 말하는 '원청'과 '하청'입니다. 1,2년마다 주민 단체와 재계약을 해야하는 보안업체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보안업체에 소속된 경비원들은 더욱 낮게 엎드려야 하는 게 현실인 겁니다. 원칙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의 노무관계에 관여할 수 없지만, 관리비를 내는 주체인 입주민이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고용에 간섭할 수 있다보니 경비원들이 정당한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경비원도 사실상 ‘감정노동자’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불쾌해도 화가 나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항상 상냥해야 하며,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경비원이 입주민들의 폭행과 폭언 때문에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으면 일종의 업무상 재해인 겁니다. 이를 인정해주고, 가해자에게 응당한 사법처리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경비원은 아파트 입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경비원의 안전을 위협해선 안 됩니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결국 불법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아파트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입주민과 입주민 대표, 보안업체(위탁업체), 경비원 모두가 정의와 법규 안에서 상식적인 예절을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아파트는 더 이상 ‘시장의 논리’가 아닌 ‘사회의 논리’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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