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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한체육회 어쩌다 이렇게 됐나?

[취재파일] 대한체육회 어쩌다 이렇게 됐나?
지난해 11월6일에 김정행 대한체육회 회장과 서상기 국민생활체육회(국생체) 회장은 '대한체육회와 국생체 양 단체 통합은 2017년 2월 이전으로 한다'는 골자의 합의문을 작성했습니다. 이 문서에는 'KOC(대한올림픽위원회) 분리 여부는 19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합의문에는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새정치민주연합 체육특별위원장인 안민석 의원도 함께 서명했습니다.

대한체육회에서 KOC를 분리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해묵은 난제입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 등 스포츠 선진국들도 각국의 사정에 맞게 서로 다른 체육 행정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KOC를 분리할 때 단점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 스포츠가 워낙 엘리트 스포츠, 특히 올림픽에 중점을 두고 있어 분리될 경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를 발굴 육성하는 KOC에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대조적으로 나머지 비(非) 올림픽 종목과 생활체육을 운영하는 통합체육회는 속된 말로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중요한 것은 대한체육회의 입장입니다. 김정행 체육회장은 분명히 지난해 11월6일 'KOC(대한올림픽위원회) 분리 여부는 19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문에 서명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KOC 분리론자이고 김종 차관도 분리에 찬성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이 합의문에 담긴 '논의'라는 단어는 누가 봐도 사실상 '추진'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합의문이 작성된 지 한 달도 안 돼 대한체육회 주요 인사들의 입에서는 "KOC 분리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지난 11일에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는 내용이 담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10월 안민석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법안소위에서 심의될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대한체육회와 KOC를 분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대한체육회의 독립적 의사에 반해 KOC를 분리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올림픽헌장 제27조 9항에 따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정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의사 표명을 저해 받을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NOC 인준이 취소돼 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해지는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이번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체육회는 경기단체 등 체육단체 관계자의 서명을 받은 공식 탄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동계종목 경기단체장들의 KOC 분리 반대 성명 발표, 선수위원회·국가대표 선수들의 교문위 법안소위장 항의 방문 등을 통해 대한체육회와 KOC의 분리를 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저는 대한체육회의 이런 행태가 웃지 못할 한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KOC가 분리될 경우 '밥그릇'이 작아질 것을 우려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이렇게 나올 생각이었다면 체육회 수장인 김정행 회장이 당연히 지난해 11월6일 합의문에 서명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때는 합의해놓고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KOC 분리 반대를 외치며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국가대표 선수까지 동원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김정행 회장은 왜 내키지도 않는 합의문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현 정권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김 회장이 결국 정부의 눈치를 본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 체육계의 지배적인 분석입니다. 김정행 회장은 2013년 2월 취임 이후 2년 동안 그 어느 역대 회장에게서도 보기 힘들만큼의 '낮은 자세'를 유지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대한체육회가 보이지 않는다. 체육회의 위상이 지금처럼 떨어진 적은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왜소해지고 존재감이 급속히 쇠퇴하는 반면 김종 문체부 차관의 파워는 하늘을 찌를 만큼 강해졌습니다. 체육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김 차관이 '대한민국 스포츠 대통령'이라고 공공연히 부를 정도가 됐습니다. 체육계의 한 원로 인사는 "우리나라 IOC 위원 2명 가운데 1명은 병상에 누워있고 다른 1명은 선수위원인데다 내년에 임기가 끝난다. 문체부 장관은 스포츠 관련 경력이 전혀 없고 대한체육회마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그를 견제할 사람이 전혀 없다"며 김 차관이 1인자로 독주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구호를 따라 국내 체육계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해왔습니다. 한국 스포츠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가 이렇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정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맹자는 '인필자모연후 인모지'(人必自侮然後 人侮之) 즉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고 했습니다. 95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체육회가 하루빨리 자존심을 세우고 정상을 되찾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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