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 주변으로 앉은 유승민, 이재오, 원유철, 이병석, 김태호, 심재철, 정병국 의원 등을 보면 4~5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느낌입니다. 자리를 지킨 친박이라고는 계파색이 옅은 김을동 최고위원과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전부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출범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원내 사령탑 자리를 비주류에게 내줬지만 현 정부의 경우 채 2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친박계 의원들이 하루 회의에 빠진 것을 두고 당무 거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유승민 원내대표 취임 이후 철옹성 같았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곤두박질 치는 상황에서 사실상 모든 당직을 비박계에 내준 채 '증세' 또는 '복지'에 대한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이 하루 아침에 부정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친박계 의원들의 곤혹스러운 심경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일부 친박 의원들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때 누구 덕분에 배지를 달았으며 함께 창출한 정권이 지난 2년간 헤맬 때 어디서 무얼 하다가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야당이나 할 소리를 서슴없이 한다며 섭섭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날 회의에 참석한 친박계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의 발언은 의미심장했습니다. 그는 "당·정·청은 칸막이 없는 한 배라는 말씀을 드린다. 한쪽 물이 새는데 한쪽만 살겠다고 하면 피할 것도, 피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디서든 격정적인 즉흥연설이 장점인 서 최고위원이지만 이 대목에서는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보고 읽었습니다. 작심은 했으나 격하지는 않았던 서 최고위원의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요?
김영삼 정부 이후 대부분의 정권들은 집권 3년 차를 전후해 각종 게이트와 측근 비리 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의 급락을 경험했습니다. 민심이 빠른 속도로 이반되면서 국정운영의 동력도 급격히 상실했습니다. 그 결과 김영삼 정부는 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김대중 정부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무너졌으며 노무현 정부도 각종 재보선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한편으로 서청원 최고위원의 발언은 지난해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여의도연구원장 내정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당내 계파간 싸움을 잠시 접어두자는 제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당내 친박계는 현재 수적으로 절대 열세입니다. 실세로 불렸던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부처에 차출됐는가 하면 주류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구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서 최고위원이 이들에게 일단 훗날을 도모하자는 당부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거듭 대통령과 대립하는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속 당직인사에서 드러나는 당의 '친박색채 빼기'가 지속될 경우 언제든 계파갈등은 재점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