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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폭스캐처', 인정 욕구에 일그러진 괴물…한낱 나약한 인간일 뿐

[리뷰] '폭스캐처', 인정 욕구에 일그러진 괴물…한낱 나약한 인간일 뿐
우리가 한낱 나약한 인간임을 자각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꾸미고, 남보다 뛰어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한다. 이는 많이 가진 자든 많이 배운 자든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가진 것이 많고, 잃은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다.

영화 '폭스캐처'(감독 베넷 밀러)는 불완전한 인간의 나약한 자아를 서늘하게 보여주는 심리극이다.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금메달리스트이자 국민적 영웅인 친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의 후광에 가려 변변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미국 굴지 재벌가의 상속인인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자신의 레슬링팀 '폭스캐처'에 합류할 것을 제안한다.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한 마크는 생애 처음으로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폭스캐처 팀에 들어간다. 마크는 존 듀폰을 코치이자 아버지처럼 여기며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기이한 성격을 지닌 존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둘 사이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급기야 존이 마크의 형인 데이브를 폭스캐처의 코치로 불러들이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는 1996년 레슬링 영웅 데이브 슐츠가 미국 최대의 화학 재벌 '듀폰'의 상속인인 존 듀폰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화학 재벌은 왜 스포츠 영웅에게 총구를 겨뒀을까. 영화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지기까지의 일을 픽션을 가미해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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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캐처'는 얼핏 스포츠 영화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심리극이다. 세 인물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 보여주지만,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은 많지 않다. 감독이 집중하고자 하는 건 링 위의 전투가 아닌 인간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부러울 것 없던 인물이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 이야기는 흥미롭다. 존은 위압감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자아는 사랑받지 못해 비뚤어진 어린아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정신은 자라지 않고 몸만 자란 존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왔지만 완벽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손에 쥐기 위해 마크에게 접근한다. 존과 마크는 일견 닮았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결핍을 가진 존과 형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마크는 모두 인정 욕구가 강하다. 두 사람은 어머니와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자 한다. 어떤 면에서 서로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인 두 사람은 부자관계와 같은 돈독한 유대감을 쌓으며 순식간에 친해진다.보살피고, 보살핌 받은 유사 부자 관계를 형성한 두 사람은 한 사건을 계기로 관계에 금이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관계 균열은 뜻밖에도 데이브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중반까지 마크와 존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다가 후반부 존과 데이브로 이동한다. 존과 슐츠 형제가 형성하는 관계의 구조가 다른 것을 중심으로 보면 영화가 보다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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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가여운 인간들을 가엽지 않게 그렸다. 어떤 시선이나 관점을 개입하지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할 뿐이다. 

인물의 불안한 내면이 드러나는 상징적인 장면이 있지만 감독은 그것조차도 건조하게 연출했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형제가 연습 경기를 하는 장면에서 형의 후광에 가린 동생의 심리적 억압을 표정으로 보여준다거나, 후반부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지도력을 과시하고 싶은 듀폰이 선수들에게 어설프게 코치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사실적인 화면과 느린 전개 탓에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극적인 연출 방식을 쓰지 않았음에도 긴장감은 시종일관 유지된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인물에 대한 밀착감을 높이는 동시에 그들의 내면과 심리를 깊숙이 들여다보게끔 만들었다. 이를 통해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주인공 모두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슐츠 형제로 분한 채닝 테이텀과 마크 러팔로는 감정 연기 뿐만 아니라 레슬러의 얼굴, 체형, 걸음걸이까지 실제 선수에 가깝게 흉내내 몰입도를 높였다.

두 배우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은 존 듀폰 역의 스티브 카렐이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댄 인 러브', '겟 스마트' 등의 영화에서 코믹한 역할을 맡아온 카렐은 종전의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신했다. 비뚤어진 자아를 무표정한 얼굴과 서늘한 눈빛으로 표현해낸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긴장감을 살리는 중심이 된다. 

'폭스캐처'는 내달 22일 열리는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올해 남우주연상 부문은 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지만, 스티브 카렐에게 트로피가 가지 않는다면 쉽게 수긍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개봉 2월 5일, 상영시간 134분, 청소년 관람불가.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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