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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또 다른 얼굴 '조선'…신라 후 시대 흔적 곳곳에

지금의 경주문화원 경내에는 전통건축물 한 채가 있다.

무심히 지나치기 십상인 목조건축물이지만 내력을 보면 이 집채가 그 유명한 신라 성덕대왕신종을 봉안한 종각(鐘閣)이다.

이것이 보호하던 신종(神鐘)은 엉뚱하게도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옮긴 상태다.

그것도 철근콘크리트 종각 안에 말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신종 종각은 언제 지은 것일까? 경주 출신으로 고향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경주학 연구자 중 한 명인 조철제(趙喆濟) 씨는 관련 자료를 통해 이 종각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 종각은 2009년 4월 기둥만 남긴 채 큰 수리공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1916년 5월에 작성한 상량문과 1667년(조선 현종 8)에 작성한 상량문을 비롯한 각종 고문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경주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한문 교사로 봉직하다 정년퇴임한 조씨는 "이 상량문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아도 지금의 종각 건물을 언제 지었는지 딱히 알 수 없다"면서도 "여러 번 중건(重建)을 했지만 건물의 기본 구조물은 항상 구 종각의 체제를 유지했을 것"이고 "다만 몇 편의 상량문을 두고 고려할 때 지금의 종각은 1769년(영조 45) 또는 1826년(순조 26)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종각이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 남지 않은 조선시대 종각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므로 "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건물 구조의 설계와 공간 배치도 등 상세한 연구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주라고 하면 대뜸 신라 서울을 떠올리고, 실제 경주에는 신라인들이 남긴 무수한 유산이 포진하고, 그것들이 각광받지만, 조씨는 성덕대왕신종 종각처럼 상대적으로 홀시받는 경주 지역 역사문화의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한 글을 많이 발표했다.

그의 신작 '또 다른 경주를 만나다'(도서출판 선)는 이런 그의 작업 결과물 중 40편가량을 뽑은 단행본이다.

이런 작업을 그가 왜 '또 다른 경주'라고 표현했는지는, 신라에만 짓눌린 '신라시대 이후의 경주'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주에는 신라 외에도 그 이후의 역사가 곳곳에서 살아숨쉰다는 강조인 셈이다.

이번 단행본에서는 특히 조선시대 경주의 흔적들을 찾아 경주에서 주로 활동하는 문화재 전업 사진작가 오세윤(52) 씨와 함께 곳곳을 누빈다.

교촌 최 부잣집 사랑채라든가 충의당의 충노각, 화계서당, 내곡정의 돌사자, 노참판 고택, 남득온 효자비, 임해정의 어제와 오늘, 경주의 비보수, 경주향고의 송단, 양동마을 무첨담 현액, 집경전, 독락당의 어서각, 경주동헌의 일승각과 법장사, 동경관, 기림사의 매월당영당 등이 그가 훑은 조선시대 경주의 문화유산이다.

조씨의 이번 작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장관 취임 직전 원고들을 검토하고서 써준 추천사에서 한 말이 정곡을 찌른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은 유적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따져 논하고, 규모가 큰 유물에는 그 한 부분에 집중하여 핵심에 대해 명료히 접근하고 있다...경주 사람으로서 경주의 지역 문화유산을 수없이 답사하고, 경주의 고문헌을 샅샅이 읽지 않고서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작업들이다." 조선시대 경주의 역사문화에 천착한 이번 책에서 조씨는 성덕대왕신종에 대해서도 괄목할 만한 파격 주장을 잇달아 내놓는다.

그에 의하면 이 신종의 명문 중 서문을 쓴 사람을 종래에는 '김필해'(金弼奚) 등으로 읽었지만, 금석문 특성상 '興'(흥)자의 약자를 오독한 것으로 '김필흥'(金弼興)으로 판독해야 하며, 서문과 시 부분 글씨를 쓴 사람도 글씨가 흐릿해 여러 주장이 난무하나 서문은 '김약호'(金若皓), 시가 부분은 '요덕'(姚德)이 각각 글씨를 쓴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격적인 주장은 성덕대왕 신종을 완성한 주인공을 완전히 달리 해석한 점이다.

종래에는 이 신종을 그의 아들인 경덕왕이 아버지를 추모해 만들다가 실패하자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이 뒤를 이어 완성했다는 것이지만, 조씨는 명문 자체를 분석한 결과 신종을 완성한 주인공은 혜공왕이 아니라 경덕왕의 두번째 부인이자 혜공왕의 어머니인 경수태후(景垂太后), 곧 만월부인(滿月夫人)이라고 말한다.

376쪽, 2만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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