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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풋볼프리즘] 35살 차두리에게 '마지막 나가토모'를 허(許)하라

[이은혜의 풋볼프리즘] 35살 차두리에게 '마지막 나가토모'를 허(許)하라

2010년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 차두리의 폭풍질주에 일본 선수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박지성은 골을 넣은 뒤 그 유명한 '산책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한국 축구의 정점을 이야기 할 때 앞으로도 계속해서 등장할 장면이다. 화려한 선수구성을 자랑했던 대표팀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짜릿한 출정식을 마치고 남아공으로 향했다. 사상 처음 나라 밖에서 이룬 월드컵 16강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당시 쓰러졌던 선수 중에는 일본 대표팀 왼쪽 수비수 나가토모 유토도 있었다. 메이지대학 졸업 후 FC 도쿄에 입단한 나가토모는 사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던 선수였다. 저돌적인 공격력과 왕성한 활동량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작은 체구, 상대적으로 빈약한 수비 능력 때문에 정상급 선수로 분류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가토모는 2008년 일본 대표에 발탁된 이후 약 5년 만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경험을 계기로 이탈리아 명문 인테르 1군에서 뛰는 첫 아시아 선수가 됐고, 현재는 인테르의 부주장까지 맡고 있을 정도다.

대부분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재 일본 대표팀 핵심 선수들은 2010 남아공월드컵, 2011 카타르 아시안컵, 2014 브라질월드컵을 모두 함께 경험했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5년 이상 꾸준히 오가며 쌓은 경험은 선수 개개인이 성장하는데도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일본 대표팀의 조직력도 높여 놨다. 그들이 수장 아기레 감독의 승부조작 스캔들에 시달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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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는 반대로 우리 대표팀은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박지성을 비롯한 2002 세대의 은퇴가 서서히 시작되면서 구심점을 잃고 흔들린 것이 사실이다. 재능 있는 선수들은 즐비했지만 지난 3년 간 감독 교체까지 반복되면서 '브라질월드컵 참사'는 예견된 비극이 됐다.

차두리와 나가토모 유토의 두번째 대결은 2011년 1월 25일, 카타르 알 가라파 스타디움이었는데 이 경기는 우리 대표팀이 신, 구세대 선수들로 조화를 이룬 사실상 마지막 경기였다. 당시 대표팀에는 이영표, 차두리, 박지성을 비롯한 2002 세대부터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09 FIFA 20세 이하 월드컵을 통해 등장한 '홍명보의 아이들' 그리고 손흥민까지 모두 포함됐다. 120분 연장 혈투 끝에 이어진 승부차기. 일본은 키커로 나선 3명이 모두 골을 성공시켰지만 한국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3년 뒤 브라질월드컵에 해설자로 참여했던 차두리는 조별리그 2차전 알제리전이 끝나고 하여없이 눈물을 흘렸다. 1승 제물로 여겼던 팀에 당한 2-4 패배. 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후배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눈물을 삼켰다. 그라운드에서 베테랑의 가치는 중요하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호주의 팀 케이힐(36), 일본의 엔도 야스히토(35), 이란의 네쿠남(35) 그리고 차두리(35)까지 정상을 노리는 팀의 중심에는 모두 관록의 선수들이 있다.

이제 슈틸리케호는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승리하면 이란-이라크전 승자와 4강을 치른다. 아랍에미리트와 8강을 치르는 일본은 중국-호주전 승자와 4강에서 만난다. 숙명의 라이벌전이기도 한 일본과의 대결이 3-4위전에서 성사될지, 결승전에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또 차두리와 나가토모의 맞대결이 성사된다고 해도 어느 쪽이 승리일지 이번에는 장담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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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대결이 22일 오후 4시 30분(한국시간)에 벌어지는 8강전 패배로 무산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수난 끝에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경기력이 형편 없어 졸전의 연속이라는 비난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살아 남았고, 이제 막 상승세를 탔다. 슈틸리케 감독은 '토너먼트 유전자'를 가진 독일 출신 지도자답게 8강 일정에 맞춰 선수 전원의 실전감각을 끌어 올렸다.

차두리는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한다. 그는 떠나지만 남게 될 후배들이 그와 함께 아시안컵 준결승, 결승이라는 경험을 쌓으면 2018 러시아월드컵 전망은 조금 더 밝아질 것이다. 2011 아시안컵에서 한국, 호주를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그 경험치를 더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칭찬보다 비난이 앞서는 축구대표팀 수비수 자리지만 차두리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조금 더 뛰겠다며 태극마크 반납을 미뤘다.

2002 4강 신화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던 차미네이터의 은퇴를 끝으로 대표팀은 이제 정말 그 역사와 작별한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 마지막 경기가 아시안컵 8강전이기에는 너무 아쉽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SBS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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