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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입장권 어떻게 빼돌렸을까?

[취재파일] 프로야구 입장권 어떻게 빼돌렸을까?
한 달 전쯤, 시청자 한 분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프로야구 입장권을 빼돌린 임원을 고발한 뉴스를 봤습니다. 저는 바로 그 프로야구 티켓 판매대행 업체에서 근무했던 전직 직원입니다. 뉴스 보고 고민하다가 어렵게 연락을 드립니다.
 
자신을 전직 프로야구 입장권 판매대행 업체 직원이라고 소개한 그는 야구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근무하면서 보고 느꼈던 점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사님은 야구장 매표소 옆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해 두고 거기서 근무하셨습니다. 다른 팀에서 주말 근무를 대신 해주겠다고 해도 거절하셨죠. 그리고 다른 종목도 많은데 참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야구’에만 집착하셨죠. 스포츠 담당 임원이긴 하지만, ‘야구’만큼은 꼭 본인이 쥐고 있으셨습니다. 고객지원팀이 있는데도 구단에 연락할 때는 꼭 본인을 통해서만 연락을 하도록 했습니다.”
 
시청자가 말한 ‘이사님’은 제가 지난달,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입장권을 빼돌렸다고 보도했던 프로야구 입장권 판매 대행사 임원이었습니다.
 
[단독] 프로야구 입장권, 판매 대행 직원이 빼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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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님은 스포츠뿐 아니라 공연과 전시 등도 총괄해야 하지만 유독 야구는 실무까지 잡고 계셨습니다. KBO 관계자들과도 자주 술자리를 가진다고 자랑도 하셨죠. 또, 어떻게 된 일인지 프로야구 시즌만 끝나면 진급하시고 차도 더 비싼 걸로 바꾸셨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차를 바꾸고 자랑하시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20분가량 이어진 통화에서 그는 중간 중간 수시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까 봐 임원의 비리를 눈감을 수밖에 없었다고 후회했습니다.
 
“회사가 작아서 프로야구 매출이 절대적으로 컸습니다. 문제가 생길까 모두 쉬쉬했죠. 회사가 어려워서 커피 믹스도 눈치 보면서 타 먹고, 출장도 자비로 가면서도 아무도 이사님의 문제를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대신해 꼭 비리를 파헤쳐 주세요.”
 
● 해당 임원, 544차례 프로야구 입장권 빼돌려

그럼, 보도 후 해당 임원은 어떻게 됐을까요? 프로야구 입장권을 판매 대행업체 임원이 빼돌린다는 보도가 나간 뒤,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찰은 내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입장권 판매대행 업체 서버를 압수수색했습니다. 그리고 입장권 판매대행 업체 직원과 프로야구위원회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50일 넘게 수사한 결과, 해당 임원은 지난 2011년 6월부터 2014년 11월 한국시리즈까지 3년 동안 프로야구 입장권을 모두 544차례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수법은 간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로 서버에 미리 접속해 입장권을 먼저 구매한 겁니다. 이렇게 그가 선점한 자리는 전산상 검은색으로 표시돼, 일반 인터넷 예매자들은 아예 표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표를 빼돌리는 행위는 포스트 시즌 경기뿐 아니라 정규 시즌 중에도 계속됐습니다. 특히, 두산-엘지, 롯데-삼성 같은 라이벌 경기가 주된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입장권 판매 대행업체 임원’이라는 지위를 사용하여 일반인들이 좋은 좌석을 예매할 수 없게 좌석이 이미 판매된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좋은 자리’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건넸습니다.
 
비리는 이렇게 좌석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개인 신용카드로 먼저 발권해 지인들에게 돈을 받고 표를 넘긴 뒤, 지인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고 나면 그 표를 다시 취소하는 수법으로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이렇게 가져간 입장권 금액은 확인된 것만 1,400만 원이 넘습니다. 경찰은 해당 임원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조만간 담당 임원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입니다.
 
● 해당 임원, 수사가 시작되자 내부 고발자 색출에 나서

이렇게 잘못이 명백한데도, 담당 임원은 보도 후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영상을 보니, 내부 관계자들만 볼 수 있는 자료다. 누군가 빼 준 게 분명하다. 기자가 빼돌렸다고 보도한 입장권은 경찰에 가서 한국야구위원회 몫으로 보낸 것이라고 말하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누가 제보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또, 기자가 사실을 왜곡해 허위 보도했기 때문에 사내 법무팀이 나설 것이다. 내부 고발자는 반드시 찾아낸다.”라며 직원들을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 회사도 임원의 비리를 알고 있어

해당 임원의 비리를 회사는 알고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회사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회사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임원이 어느 정도 ‘나쁜 짓’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합쳐지고 그러면서 어수선했고, 그 사람이 수년 동안 프로야구 담당자로 있었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도 함부로 뭐라고 얘기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도 이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회사가 임원의 비리를 방임하는 동안 애꿎은 야구 팬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초조한 마음으로 마우스만 눌러야 했습니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취재과정에서 많은 야구 팬들을 만났습니다. 야구를 사랑하고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람해주는 이런 팬들이 있어 프로야구 구단도, 선수도 그리고 입장권 판매대행 업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임원에게 야구 팬들은 그저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어수룩한 '물주'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리를 저지른 임원을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건 앞으로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경찰 수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야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에게 야구 입장권을 오롯하게 돌려주는 것, 그게 그렇게 좋아하시는 '비정상의 정상화'일 것입니다. 그 과정을 시청자 여러분과 모든 야구 팬들과 함께 또다시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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