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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하루 세 끼 햄버거와 콜라만 먹습니다"…공항에 갇힌 사람들

<항공풍경> 정재돈
 
창궁에 오르면 구름은 소금밭이고
시푸른 하늘은 광활한 바다이다
바다 위에 소금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물음표
모두가 풀지 못한 저 의문 속에 살고 있다.
 
제2회 항공문학상 최우수상에 빛나는 정재돈 시인의 작품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하늘은 광활한 바다가 되고, 구름은 소금밭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발을 붙이고 사는 땅은 물음표가 가득한 ‘의문 속 세상’이지만, 시인은 비행기를 타면 하늘은 ‘소금 꽃이 흐드러지게 핀 바다’가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공항에만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공항도 누군가에게는 힘들고,괴롭고,끔찍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놓친 승객, 여권을 챙겨오지 못한 사람,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연인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이 다시 도드라진 건 가수 이승철 씨 소식을 접하면서였습니다. 지난달 9일, 이씨는 지인의 초대로 일본을 가려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정확한 입국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씨는 자신이 독도에서 음악회를 열었던 게 그 이유일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 무렵, 친분이 있는 정보기관 직원을 만났습니다. 공항 근무 경험이 있는 그와 이승철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안타까워하는 저와 다르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승철 씨는 공항에 잠깐 기다렸다가 바로 돌아왔잖아요. 인천공항에 가면 지하에 갇혀 수개월씩 머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햄버거와 콜라만 먹었더니 혈변이 나온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항 지하에서 몇 달 씩 머무는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을까? 여러 취재원에게 수소문한 끝에, 인천공항 3층 출국장 지하에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난민신청을 거부당해 우리나라 입국이 거부된 ‘입국 불허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400제곱미터 크기의 사무실에 남녀로 나눠 생활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딱딱한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침구도 없는 딱딱한 나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는 하루 세 끼 나오는 햄버거와 탄산음료가 전부였습니다. 난민 신청을 거부당해 7개월째 머물고 있는 한 라이베리아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달 동안 햄버거와 콜라만 먹었더니 화장실에 가면 혈변이 나온다. 이곳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민간 항공사가 ‘입국 불허자’ 관리


이들 ‘입국 불허자’들은 왜 이런 대접을 받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들을 관리하고 돌려보낼 책임이 이 사람들을 태우고 온 항공사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 대한 관리가 미흡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항공사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공사 직원 1]
“출국 대기실엔 식당이 없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 수가 없다. 김밥 같은 음식은 금방 상해서 식중독 위험이 있다. 포크나 칼 같은 도구를 주면 자해할 수 있어서 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햄버거와 탄산음료밖에 줄 수가 없다.”

 
[항공사 직원 2]
“입국 불허자들 식비, 관리 직원 인건비 등을 따지면 연간 수억 원이 들어간다. 항공사 입장에선 적지 않는 부담이다. 여기가 호텔은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그들을 극진히 대접해야 할 이유는 분명히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 공항에 잡혀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그것 또한, 마음 아플 거 같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대법원, “입국 불허자를 대기실에만 가둬두는 건 인권침해”

더 큰 문제는 지난 8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시작됐습니다. 입국 불허 판정을 받고 공항에서 장기간 체류하던 한 수단인이 대기실에 머물게 하는 건 위법이라며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한 것입니다. 이 판결로 법무부는 어쩔 수 없이 출국 대기실을 개방형을 바꿨습니다. 한마디로 대기실을 나가길 원하는 입국 불허자들이 면세점이 있는 환승 구역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는 소홀하기만 합니다. 환승 구역을 돌아다니는 입국 불허자들을 항공사 직원들이 다 관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국항공사 직원]
“인천공항에 상주하는 직원이 몇 명 없다. 승객이 환승 구역 어디에 있는지 계속 쫓아다니며 관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른 승객들과 싸우거나 범죄를 일으켜도 어쩔 수 없다. 자칫 공항에 노숙자들이 판을 칠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 정부가 모든 걸 항공사에만 부담시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이런 비판에도, 법무부는 여전히 입국 불허자들의 송환-관리 책임을 민간 항공사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법무부는 각 항공사에 이들 입국 불허자가 밀입국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하루 2차례 관계 기관에 이들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송환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과연, 이들 입국 불허자 관리를 민간 항공사에만 맡기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요?
 
●미국-영국 등 항공선진국은 국가가 송환 업무 맡아

미국이나 영국 등 대다수의 항공선진국은 입국 불허자들의 관리와 송환 업무를 국가가 직접 챙기고 있습니다. 실례로 영국은 입국 불허자 한 명을 돌려보내기 위해 전세기까지 띄우기도 합니다. 입국 불허자들 가운데는 송환을 거부하기 위해 항공기 안에서 옷을 벗거나 소변을 보는 등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큰 비용을 지급하더라도 한 명을 보내기 위해 전세기까지 띄우는 겁니다. 미국도 출국 때 발생하는 항공료 등 비용 부담은 항공사에 부담시키지만, 미국 영토 내에 머물 때 ‘구치 책임’은 정부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입국 불허자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건 입국 불허자들이 다른 승객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밀입국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부산 김해공항에서 국제선 청사 2층 출국대기실에 있던 우즈베키스탄인 무쿠노브 씨가 항공공사 경비용역업체 직원의 감시 소홀을 틈타 도주하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지난 2005년과 2006년에도 출국을 위해 대기하던 외국인이 도주하려다 붙잡힌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송나라 유학자 구양수가 쓴 ‘영관전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화환상적어흘미(禍患常積於忽)’ 사람이 큰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대부분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입니다. 큰 돌은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미리 조심하여 피해 가지만, 작은 돌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살피지 않다가 걸려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단 한 명의 입국 불허자를 송환하기 위해 전세기까지 동원하는 영국 정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국민의 안녕을 위해 국가의 정당한 공권력을 제대로 활용해주길 바랍니다.

▶대기실서 먹고 자고…공항에 갇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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