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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거대기업 애플을 이긴 상식의 힘

'애플의 이상한 AS'에 첫 제동

[취재파일] 거대기업 애플을 이긴 상식의 힘
명품 가방이 하나 있다. 100만원 짜리다. 1년 정도 쓰다보니 지퍼도 고장나고 손잡이도 좀 덜렁덜렁해서 공인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처음엔 고장난 부분만 수리하는 게 된다고 해서 맡겼다. 며칠 뒤 부분 수리는 안되고 34만 원을 내면 새것과 같은 '리퍼 가방'으로 바꿔주겠다고 통보가 왔다. '100만 원짜리를 34만 원이나 주고 수리하는 건 좀 과한데...' 그냥 내 가방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못 준단다. 일단 수리를 맡으면 돌려주진 않는다는 게 자기네 정책이라는 거다. 내 돈 주고 산 내 가방인데 수리 맡기면 회사 소유가 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결국은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명품 가방 대신 '아이폰 5'로 바꾸면 오원국 씨 사연 그대로다.  
애플 오원국
[아리]'애플의 이

오씨는 2012년 12월 아이폰 5를 102만 7천 원을 주고 구입했다. 11개월 정도 쓰다가 몇 가지 고장 때문에 2013년 11월 14일 애플 공인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접수했다. 그 후로 1년이 넘도록 오씨는 자신이 돈 주고 산 아이폰을 돌려받지 못했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와 매체에 이런 내용이 나왔고 지난 7월 어느 더운 날 광주로 날아가 오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리고 기사와 취재파일을 썼다.
( 당시 기사 보기 => "수리 맡긴 제품 못 돌려줍니다" 애플 이상한 AS ,     
당시 취재파일 보기 => 애플 AS 또 논란…"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 )

오씨는 애플사와 다투면서, 소비자원에 피해자 구제 신청을 냈고 (애플이 중재 거부), 민사, 형사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민사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형사는 횡령으로 애플코리아를 고소했다. (형사는 기각) 또 오씨 사례를 알게 된 경실련에서는 애플의 수리 약관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약관 심사를 청구했다.(심사 중)

심영구 취재파일용

이중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결과가 12월 9일 나온 것이다. 결과는 원고 승소, 법원은 피고인 애플코리아에게 오씨에게 휴대전화 구입비 102만 7천원과 그간의 정신적 피해에 원래 전화에 들어있던 사진 등 자료 손실에 대한 배상조로 50만 원을 더해 152만 7천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전 취재파일에도 썼지만 삼성이나 LG 등 다른 제조사와 달리 애플이 취하고 있는, 리퍼비시 refurbish, '리퍼폰'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애플은, 고장난 아이폰을 새것과 다름없는 리퍼폰으로 바꿔주는 게 소비자 편의를 위해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수거한 고장 제품을 분해 및 재활용해 사용하기에 '환경 친화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리퍼폰도 꽤 합리적일 수 있는 정책이나, 100만원 주고 산 아이폰5를, 1년 지나 34만 원 내고 거의 똑같다는 아이폰5를 또 받아쓰는 것, 요즘 생각으로는 나도 썩 내키지 않을 것 같다.(이제는 아이폰 6도 나왔는데!) 스마트폰의 사용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고 아이폰은 아니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중엔 훨씬 가격은 싸면서도 쓸만한 것들이 계속 출시되고 있다. 리퍼폰 정책을 유지는 하되, 소비자에게 충분히 취지를 설명하고 그냥 수리받을지, 얼마 더 내고 리퍼폰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잡음은 크게 줄어들 것 같다.

심영구 취재파일용

하지만 그럼에도 애플은 그러지 않을 것 같다. 7월에 기사 쓸 때 애플코리아가 내놓은 입장은 "특별히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다"였고 이번에는 "현재 공식 답변이 어렵다"였다.(이와 관련해서는, 애플코리아에 아무런 권한이 없고 언론에서 제기하는 문제나 소비자 불만이나 모든 것을 애플 본사가 관장하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해석이 있다. 그런 듯하다.)

애플의 AS 정책 변화까지 기대하는 건 시기상조 같다.

애플이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항소심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항소심도 1심 판결과 비슷하게 나온다면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수도 있겠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약관 심사 결과가 오히려 기대된다. 공정위가 불공정 약관이니 시정하라고 하면 애플은 국내에서 영업하기 위해서는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약관 심사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는 나올 것 같다.

오씨는 판결 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의 정책이 대한민국 법 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산 아이폰은 제 소유니까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애플의 핸드폰은 제가 보기에도 좋아요. 그런데 서비스 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한국만 너무 안 좋아요. 그게 이해가 안되죠."

"분명히 애플코리아에서는 항소를 할 거예요. 그래도 끝까지 갈 생각이고요. 제 사례로 판례가 생겨서 아이폰 사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요."


시민의 합리적인 상식이 인정받는 재판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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