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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연의 썸풋볼] 아스날, 벵거와 '4위 딜레마'

[한범연의 썸풋볼] 아스날, 벵거와 '4위 딜레마'
부상당한 보이첵 슈제츠니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아르센 벵거 감독,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쳐

공은 둥글다는 표현은, 축구에서는 양 팀 모두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승리 가능성 100%를 가져가는 팀은 없고, 경기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100%가 되는 팀은 없다. 특히 같은 리그에 속한 팀끼리의 경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프리미어 리그 정도 된다면, 상대가 누구든 승리의 가능성을 30대 70으로 나눠 갖는 수준의 팀은 없다고 보면 된다. 모두가 못해도 45% 정도는 승리 가능성을 안고 그라운드에 오른다고 생각해보자.

맨유와 아스날은 양 팀 모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딱 비슷한 수준의 경기력을 갖고 있을 때 만났다. 그나마 홈에서 상대를 맞이하는 아스날이 좀 더 우세를 점했고, 훨씬 활기차게 경기에 임했다. 그래도 이 경기는 각자 49.9%만을 가지고, 0.1%를 놓고 밀고 당기는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아스날은 그 0.1%의 우세를 계속 놓지 않았다. 많은 슈팅이 맨유의 골문 안으로 향했고, 데 헤아의 위치 선정이 아니었다면 경기는 애초에 기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0.1%의 우세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선수들의 집중력과 감독의 선택, 혹은 흔히 말하는 슈퍼스타의 존재들이다. 때로는 부상과 퇴장 등이 경기를 뒤흔들기도 한다.

0.1%의 공방이 계속되는 형국에서 누군가 50.2%를 취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경기는 기울어지기 쉽다. 계속되던 긴장감에 한순간 파열이 오고, 단지 0.1%이 멀어졌을 뿐인데 선수들은 초조해진다. 급해진 마음은 실수를 낳기 시작해 상대에게 내어준 0.2%는 0.3%이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멀어져 간다.

여기서 감독의 역량이 드러난다. 50.2%를 취했을 때 이를 지켜내는 능력, 그리고 다시 선수들을 차분하게 만들어 0.1의 공방을 재개하여 다시금 50대 50을 만들어내는 능력.

아스날은 많은 것을 놓쳤다. 50.2%를 가져갈 수 있는 기회는 모조리 데 헤아의 품으로 던져줬고, 마이크 딘과 그의 선심들은 아스날에서 기회를 뺏어와 맨유에 건네주었다. 그러다 결국 아스날은 스스로 맨유가 50.1%과 50.2%의 미묘한 선을 넘어갈 수 있게 허용해 버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자책골을 넣은 깁스는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고, 모두가 허둥대기만 했다. 허약한 맨유의 수비는 많은 기회를 허용했지만, 아스날은 다시금 우위를 되찾아올 능력이 충분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감독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경기가 시작되고 나면 감독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라는 것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벵거는 부상으로 인해 두 명의 교체 카드를 잃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0.1%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메우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짧은 순간 흐름을 파악하고 적절한 변화를 주어야 하지만, 아스날은 실점 이후 우왕좌왕하며 선장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스날의 가장 큰 문제는 공격 진영, 흔히 파이널 써드라고 부르는 지점이다. 아스날은 이 지점까지 공을 힘들게 갖고 올라오지만,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 마냥 산체스만 바라보고 있다. 벵거는 이곳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시즌 외질을 데려왔지만, 감독이 변화를 주지 않는데 선수만 새로 끼워 넣는다고 해결이 될까?

맨유와의 라이벌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점 이후 아스날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고는 해도, 50.1의 선이 깨어진 이상 승기는 맨유 쪽으로 급속도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스날은 파이널 써드에서 여전히 답을 찾지도 못했고, 답을 찾기 위한 변화도 없었다. 아스날의 패배를 단순히 부족한 골 결정력과 불운의 탓으로 돌리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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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며 경기를 지켜 봤을까?,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쳐

열정에 넘치는 산체스는 엄청난 활동량을 보인다. 가끔은 자신의 역할을 벗어나는 곳까지 뛰어다니고, 이는 동료들의 역할을 혼란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산체스는 에이스다. 그가 필요하다면 그라운드 반대편까지 뛰어가는 모습은 오히려 아스날에 필요한 전술적 변화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감독은 에이스의 움직임에 맞춰 선수들에게 변화를 줘야 한다. 모든 선수가 경기 양상과 산체스의 움직임을 고려해 스스로 알맞은 변화를 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선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감독이 훈련을 통해 유기적인 변화를 몸에 익혀주거나, 그라운드 위에서 적극적인 지시를 내려야 한다. 하지만 ‘선수들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감독은 산체스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관객이 되었고, 지시를 받지 못한 선수들 사이에서 산체스가 열심히 뛰면 뛸수록 팀으로서의 형태는 더 망가져만 간다.

아스날의 공격은 현재 아스날의 시즌 상황과 정확히 맞물려있다. 아스날의 공격은 파이널 써드에서 골을 위해 전진할 방법을 찾지도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다가 역습을 당한다. 마찬가지로 아스날의 시즌은 4위 이상 올라가기 위한 동력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아스날은 역습을 당해 패배했다. 시즌에서조차 언제 중상위권 팀에게 습격을 당해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내어주게 될지 알 수 없고, 이미 이번 시즌 그 징조가 보이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하지만 결국은 이기는 경기가 많았다. 이젠 아슬아슬하게 비기거나 지는 경기가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아스날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골을 넣지 못하면 아무리 공격 진영까지 공을 멋있게 운반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골을 넣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를 찾아줄 변화가 필요하다.
만약 어떤 선수가 공을 골대 앞까지 운반하는 것에 탁월하나, 득점에 전혀 능력이 없다고 가정하자. 변화가 필요하다. 득점해줄 동료를 사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수가 전혀 협력할 생각이 없이 독단적으로 플레이하며 득점 기회를 놓친다면 그 선수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아무리 그 선수가 공의 운반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모험이다. 새로 사온 선수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공의 운반에 그치지 않고, 축구의 목표인 ‘골’을 위해서라면 모험을 걸어야 한다. 공을 운반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 고마움과 득점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스날은 깨달아야 한다. 만약 어떤 감독이 늘 4위까지 올려준다면 그것도 좋은 능력이다. 이를 감사해야 하는 상황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상을 노릴 수 있는 팀이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고, 감독은 주변의 조언마저 ‘감독으로서 몇 경기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라며 무시하고 있다.
아스날이 우승을 노리는 클럽으로서 목적을 이루려면, 10년간 찾지 못한 열쇠를 찾으려면 모험을 걸어야 한다. 늘 4위에는 안착시켜주는 감독과 4위까지가 한계인 감독. 벵거를 어느 쪽으로 바라보는지는 결국 아스날이 얼마나 높은 곳을 목표로 하느냐의 차이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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