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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개망신 주려고 초청했나"…'의전'이 뭐길래

[취재파일] "개망신 주려고 초청했나"…'의전'이 뭐길래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정부로부터 한중 FTA 체결 결과를 처음으로 보고 받는 자리였습니다. 이동필 농림부장관과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참석했습니다. 이동필 농림부장관이 보고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위해 정회를 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농해수위 새누리당 간사인 안효대 의원이 난데없이 전날 있었던 '농업인의 날' 기념식 얘기를 꺼냈습니다. 물론, 한중 FTA와는 상관 없었습니다.

안효대 의원은 기념식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만 축사를 하고, 김우남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은 빼놓은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정부 측 대표가 축사를 하면 국회를 대표해서 간 상임위원장이 축사를 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냐"며 이동필 장관을 질책했습니다. "지역에 가도, 시장이 나와서 축사를 하면 국회의원도 축사를 한다"면서 "어제 행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행사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야당 의원도 가세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승남 의원은 "농림부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의전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동필 장관은 "저도 나중에서야 보고를 받았다", "저희 직원들이 총리실과 협의를 했지만 관철되지 못했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거듭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급기야 김우남 농해수위 위원장이 직접 나섰습니다. "장관이 비겁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호통쳤습니다. "내가 국무총리 산하에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그런 수준의 사람이오?",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도 아니고, 총리가 국회까지 거느립니까?"라는 김 위원장의 고성이 이어졌습니다.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더니, "국회의원들 개망신 주려고 초청한 겁니까?", "대한민국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이 다른 날도 아니고 농림부가 주관하는 농업인의 날 행사에 가서 총리 훈계나 듣고 앉아서 되겠습니까?", "그게 대한민국 농정의 현 주소요?", "그렇게 하니까 장관은 고소하십니까?"라는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이런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말까지 하고나서야 고성은 멈췄습니다.

흔히 '의전'이라고 하면 지나친 격식, 과도한 형식을 연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행사에서 의전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준비를 엄청 많이 하고도 사소한 의전 실수 하나로 행사 전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특히 국가관계에서는 의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선 만찬 메뉴로 전주비빔밥이 나왔는데, '남과 북이 하나됨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곁들여지면서 분위기 고조에 일조했습니다.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1993년 방한 도중 청와대 연무관에서 수영을 하고 샤워를 하는데, 한국 외교부가 내 애창곡을 미리 파악해 스피커를 통해 틀어줬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어 감사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2000년 서울 ASEM 정상회의 때 여러 호텔에 분산 투숙돼 있던 25개국 정상들의 차량을 회의장에 정확히 1분 간격으로 도착시킨 사례도 우리 외교 의전의 한 일화로 전해집니다.
APEC 정상회의
실수를 막기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미리 정해 놓기도 합니다. 정상급 외빈에 대한 의전 서열은 국가 원수 → 행정 수반 순으로 하되, 동급인 경우 영어 국명의 알파벳 순서로 합니다. 이번 중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가 옆자리에 앉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 국가명(KOREA)의 'K'와 일본 국가명(JAPAN)의 'J'가 나란히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정상회담 때 방문국 정상에게는 상석인 오른쪽을 양보하고, 호스트와 주빈이 마주보고 앉았을 때 호스트 오른쪽에 서열 1위를, 주빈 오른쪽에 서열 2위를, 다시 호스트 왼쪽에 서열 3위를, 주빈 왼쪽에 서열 4위를 앉히도록 돼 있습니다. 

다시 국회로 돌아가 봅니다. 과연 공개적인 자리에서 고성까지 질러야 했을까. 김우남 농해수위 위원장이 전한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지역구가 제주도인 김 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 내리자마자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기념식에서 축사가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그것도 장관이나 차관이 직접 전화한 게 아니라, 농림부의 한 국장이 자신의 보좌관에게 전화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자신에게는 죄송하다는 전화 한 통 없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입니다.

이동필 농림부장관의 해명은 또 이렇습니다. 그날 행사의 주관은 농림부가 아니라 농협중앙회와 농업인 단체였고, 다만 국회의원들 참석 문제 때문에 농림부장관 이름으로 초청장을 보냈으며, 축사와 의전을 놓고 총리실과 상의했지만 농림부의 입장이 반영이 안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총리 일정이 바빠 축사를 여러 명 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총리 일정 때문에 국회 상임위원장의 축사가 빠진 셈입니다.

화가 났을 법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한중 FTA 현안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까지 공개적으로 고성을 지를 만한 사안이었는지, 개별적으로 연락하거나 회의 시작 전 또는 정회 중에 따로 불러서 얘기할 수는 없었는지 곱씹어보게 합니다.

▶ [8뉴스] 여야, 한중 FTA 현안엔 이견…의전엔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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