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남자단체 9연패가 좌절된 것처럼 한국 양궁이 최강 지위를 위협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이 30년 넘게 각종 대회에서 독주하는 까닭에 팬들 사이에서는 양궁 태극마크는 곧 금메달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부터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 뒤로 경기 규칙의 변화는 수시로 찾아왔고 일부는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강행된 조치라는 의심까지 샀습니다.
세계양궁연맹(WA·구 FITA)은 양궁의 전통이던 개인전 288발 기록합산제의 전통을 1987년 폐기했습니다.
이 제도는 화살 수가 워낙 많아 안정적으로 득점하는 선수가 계속 득세해 이변이 없었습니다.
새로 도입된 제도에서는 36발 경기를 펼쳐 하위권 선수를 탈락시키다가 8강으로 압축되면 36발로 최종 순위를 가렸습니다.
FITA는 1993년에는 개인전 화살 수를 18발로 줄이고 1대1 토너먼트까지 적용했습니다.
전통적인 시각으로 볼 때 기량이 안정된 선수들이 중도에 탈락하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FITA는 2010년에는 개인전 토너먼트의 승부를 세트승점으로 결정하는 제도를 가미해 이변 가능성을 더 높였습니다.
개인전은 세 발짜리 승부를 3∼5차례 되풀이하는 경기로 변화했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에서 24발 합산제 대신 세트제가 도입됐습니다.
상위권에서 무승부가 워낙 많아져 사실상 마지막 화살 세 발로 겨루는 복불복 성격이 가미됐습니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부 세계랭킹 1위 이승윤이 16강전에서 세계랭킹 49위 용지웨이(중국)에게 패배했습니다.
남자 단체전 4강에서도 중국에 패배해 1982년 뉴델리 대회부터 이어온 아시안게임 연패 가 8개 대회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규정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 지도자들이 세계 각국에 기술을 전파하면서 전력이 세계적으로 평준화하기도 했습니다.
런던올림픽의 남자 4강국의 사령탑은 한국을 포함해 모두 한국인이었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결승에 오른 중국도 한때 한국 지도자들의 조련을 받았습니다.
중국과 결승에서 맞붙는 말레이시아의 사령탑도 한국인 김재형 감독입니다.
류수정 한국 여자 대표팀 감독은 "한국 양궁이 계속 이기고는 있지만 얼마나 어렵게 이기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주현정은 "양궁 금메달이 당연한 게 아니다"며 "최근 수년간 한국인 따낸 금메달은 더 어렵게 따낸 금메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양궁 국가대표가 '독이 든 성배'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환경은 점점 험난해져 가지만 그간 쌓아온 업적과 지위가 눈부신 까닭에 정상을 놓치면 지탄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지도자는 "'폭탄 돌리기' 같은 부담"이라며 "선배들의 눈부신 업적에 누군가는 누를 끼치게 될 것인데 그 사람은 역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