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저인 “Economics : The User’s Guide” 는 펭귄출판사가 1937년부터 발간해 온 유서깊은 교양서 시리즈 펠리컨 북스(Pelican Books) 로 나왔다. ▶영국 아마존에서 보기 (클릭)
펠리컨북스 시리즈는 1984년 발간이 중단되었던 것을, 펭귄출판사가 올해 4월부터 다시 내기 시작했다. 출판사측은 인류학, 역사, 뇌과학 등 5개 분야의 개론적 저작을 시리즈의 첫 5권으로 삼았다. “Economics : The User’s Guide”는 이 중 경제학 개론서로 출판사측이 장하준 교수에게 의뢰한 것이다. 그만큼, 영국 지식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장하준 교수는 “2년 반 동안 여러 차례 갈아 엎어가며 정말 열심히 썼다. 대학입시때도 이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라는 말로 집필의 노고를 표현했다. 그는 이미 경제에 대해 많은 베스트 셀러를 썼는데, 이번 책이 전작들과 다른 점으로 “특정 이슈에 대해 쓴 게 아니다”라는 점을 들었다. 독자들이 경제 전체를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집필의 의도는 “경제학 강의”라는 우리말 제목보다 “The User’s Guide”라는 영어 제목에 보다 잘 드러난다. “경제”라는 매우 중요한 것을, “이용자” 들이 잘 알고 쓸 수 있도록 설명해 준다는 취지다.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지금과 같은 금융의 과잉, 그리고 규제완화와 자유경쟁으로 대변되는 자유시장주의 일변도의 경제 해석과 운용에 반대한다. 하지만 자신이 “반(反) 신고전주의자”라고 일면적- 단선적으로 재단되는 것 또한 경계한다. 기자간담회 내내 , 그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론이 있으며, 어떤 상황의 어떤 문제를 푸는 데에는 무엇이 적절한 논리인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에 따라서는 신고전주의가 이해와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장하준 교수는 흔히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의 문제로, 경제를 ‘교환가치’와 ‘시장’ 위주로 설명하다보니 일과 노동, 생산의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소비자’로만 취급하고, 인간의 노동시간과 강도, 스트레스의 증대, 고용불안 등의 문제는 외면하며, 정책도 자꾸 그런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고 비판했다.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장하준 교수는 이런 저런 경제 현안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장 교수와 출판사(부키)측은, 시사적인 이슈보다는 책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어차피 기자들을 모아놓으면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아래는, 1시간 20분 가까이 진행됐던 문답 가운데 일부를 추린 것이다.
* 경제보다 웃자란 금융이 문제…2008년같은 위기 또 온다
“세계 금융자산과 GDP를 비교해 보면 70년대까지는 1.2대 1쯤 됐다. 지금은 추산에 따라 4대1, 5대 1로 본다. 건물에 비유하자면, 기초는 똑같은데 건물이 4-5배 높아진 셈이다. (당연히, 불안요인이 커진다.) 2007-8년에 큰 위기를 겪고 나서도 금융에 대한 규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 증시는 지금 유례없는 거품이다. 2008년 위기 직전, 2007년 가을에 비해 주가지수가 20%높은데 미국 경제 자체는 그때보다 1-2% 밖에 안 커졌기 때문이다. 2007년에도 주가가 거품이어서 고꾸라졌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큰 거품이 있는 거다. 2008년에 있었던 일이 또다시 재발할 거라고 생각한다. 타이밍을 맞추는 게 문제지만.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뇌관은 우크라이나 문제로 인한 러시아와 유럽의 갈등,
중국 경제 내부 문제 등 무엇이 될 지 모르지만, 위기는 또다시 닥칠 것이다.”
*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약속을 너무 가볍게 어겼다”
양극화 , 복지 등 약속해 놓고 어긴 게 너무 많다. 일이라는 게 하다 보면 경제상황이 변하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너무 가볍게 약속을 깼다는 것이다.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는 사정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 세월호 사고에 대한 경제학자로서의 생각…"금융도 규제 잘 해야 사람 목숨 지킨다"
세월호 사고는 무분별한 규제완화에서 비롯됐다. 있는 규제마저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금융규제의 문제도 그렇다. 잘못하면 결국 사람이 죽는다.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직장을 잃고 생계가 끊겨 자살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나. 결국 잘못된 규제완화 때문에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이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는 등의 물리적 안전 못지않게 경제적 안전도 중요하다.
* 대기업의 유보금을 풀지 않으면 세금을 매기겠다는 정책에 대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정책을 왜 하는지 잊지 말아야”
기업 지배구조 자체를 다르게 만들어 놓으면 기업들이 이렇게 돈을 모아 쌓아놓는 일 자체가 줄어들 것이다. 과거 일본,독일 등은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단기경영, 현금보유 강조 등으로 안 갔던 이유가, 기업지배구조를 다르게 만들어서 주주의 단기적 압력을 줄였기 때문이다.
독일은 “공동결정제”를 통해 기업의 인수 합병에 노동자 동의를 받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인수합병이 매우 어렵고 경영자들이 이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경영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일본은 법제 자체는 미국식 상법 회사법 체계를 도입했지만, 자기네가 약한걸 알고 1964년 OECD 개방하면서 자본시장 개방 전에 서로 우호지분을 많이 확보해서 그런 압력을 줄여놨다.
기업 유보금 자체에 대해 법으로 문제삼은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남들이 안한다고 못할 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정책을 왜 하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책의 의도는 돈이 돌게 하자는 거다. 그런데, 배당금을 주면, 증시의 30%를 차지하는
외국인에게 가장 많이 갈 것이고, 가계 투자가는 10%밖에 가져가지 못한다. 그래가지고 가계에 돈이 돌겠나. 돈을 돌게 하려면 임금을 올리던지 투자를 하라고 해야지 왜 거기 배당이 끼어드는지 모르겠다.
* FTA에 대한 평가는? 우리나라가 경제적 대외관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FTA는 수준 차이가 큰 나라끼리 하면 결국은 후진국이 손해보는 장사다. 처음에는 교역이 늘어나 플러스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일수도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후진국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가 60년대에 개방했다면 지금 포스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있겠는가.
FTA의 영향은 20-30년을 두고 장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20-30년 뒤에 구미 선진국의 제약, 화학, 바이오, 첨단부품 산업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때 가서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기 중심의 지역경제체제를 만들며 우리보고 들어오라고 하는데, 그런 지역 묶음 가입 문제는 이제 정치의 문제다.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면 안된다. 이런 민감한 입장에 처한 우리나라는 (FTA와 같은 양자 관계보다, WTO와 같은) 다자간 무역질서를 앞장서 주장해 왔어야 한다. 앞으로 하는 거라도 신중하게 잘 풀어나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불안하면 창의력이 나오나"
비정규직 옹호 논리 중 하나는 사람들이 불안해야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이건 전제가 잘못된 얘기다. 이제 우리나라는 그런 단계를 벗어난 것 아닌가.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불안하면 일이 되나? 앞으로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