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을 가정하는 것 자체가 좀 무섭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런 상황을 한번 가정해보겠습니다.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됐습니다. 제게 만약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또 저의 가족들은 저 대신 어떠한 선택을 내릴까요.
저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숨만 쉬며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할머니의 존엄사가 사회적 논쟁을 불러왔을 때 그렇게 제 생각을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기다려왔던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미 제 뱃속에 자리를 잡은 이상 엄마로서 아이의 생명과 건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비록 제가 평소 생각해왔던 모습은 아닐지언정 아이가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때까지라도 인공호흡기를 끼고 살길 바랄 겁니다. 하지만 또 과연 태아 15주 때부터 숨만 쉬는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저로 인해 이미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있을 게 분명하다면 과연 이 아이를 낳는 게 맞는 것일까 답을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그것도 엄마인 제가 보살필 수도 없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미국에서 이런 상황에 놓인 가족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26일 33살 말리스 무뇨즈가 집 안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남편 에릭 무뇨즈가 발견했습니다. 말리스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말리스도 저와 마찬가지로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시기도 비슷한 임신 14주차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말리스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고 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았습니다.
임신부가 존엄사할 권리, 그리고 태아의 생명. 이 둘 중에 하나밖에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는 게 옳은 것일까요. 내가, 또 나의 가족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법원의 판결이 궁금해집니다. 미국 텍사스주 태런트카운티 지방법원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사건을 맡은 R.H 월리스 주니어 판사는 텍사스 주법에 분명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임신부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선 안 된다고 나와 있긴 하지만 말리스는 법적으로, 의학적으로 사실상 사망상태인 만큼 법에 나와 있는 ‘임신부’ 조항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말리스 뱃속의 태아가 판결 당시 23주차가 됐는데도 성별조차 알 수 없고(이미 성별을 알 수 있는 시기가 한참 지났는데도:덧붙여 한국에서는 16주차 정도 되면 사실상 성별을 알려주는 병원이 많은데도) 잠재적으로 심장질환까지 의심된다며 아이가 명백하게 비정상이라는 가족들의 주장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말리스 가족을 넘어 미국 사회에 태아의 생명보호와 뇌사 임신부의 존엄사 권리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뇌사 임신부의 존엄사 권리를 지키는 것이 태아의 사망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낙태에 대한 찬반 논란도 함께 일었습니다. 최종 재판에도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와 옹호하는 단체가 모두 참석해 공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