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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뱅쇼'가 생각나는 주말-와인 즐기는 법 ①

[취재파일] '뱅쇼'가 생각나는 주말-와인 즐기는 법 ①
어차피 취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와인은 술중에 격조 높은 술로 인식돼 있다. 파리특파원 근무를 하면서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4년 동안 보고 들었던 경험을 되짚어 몇 가지 와인 즐기는 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제안하는 내용들은 철저히 경험칙에서 나온 것이며 과학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프랑스에 파견나간 애주가들은 대부분 한 두 차례 열병을 치른다. 뒤 끝이 고약한 과실주 와인의 무서움을 모르고 향기와 분위기에 취해 한국식으로 벌컥벌컥 들이켜다 보면 다음날 아침은 그야말로 죽음이다. 천근만근 무겁고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가까스로 일으켜 출근하면서 ‘다시는 와인을 마시지 않으리’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러나 두통이 가시고 하루 이틀만 지나면 향긋한 와인의 유혹에 빠져 집근처 브라서리(brasserie)로 향하게 되는 게 초보 파리지앵의 보편적인 행태다.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고 프랑스인들은 와인을 즐기는데 그다지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 좋은 와인 자체를 찾기보다는 음식에 잘 맞는 와인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들이 즐기는 프랑스 요리와 어떤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것은 전문 서적을 참고하시라. 현실적으로 한식을 주로 먹는 우리들에게 어떤 와인이 좋을까 하는 점에 대해 유심히 살펴보았다. ‘코트 뒤 론(Cotes-du-Rhone)'이 대세였다. 파리로 이주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교포들, 한식을 주식으로 하며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코트 뒤 론’을 적극 추천했다. 실제로 내가 마셔 봐도 한식과의 궁합이 기가 막혔다. ‘코트 뒤 론’은 프랑스 남부 론 지방의 와인이다. 지도를 보면 론 지방은 부르고뉴와 보르도, 지중해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다. 그만큼 프랑스 와인의 특장점을 골고루 갖고 있다. 타닌 성분이 강해 무겁게 느껴지는 보르도 와인보다 한결 부드러우며 부르고뉴 와인의 꽃향기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지중해 와인과 같이 당도가 지나치게 높지도 않아 담백하다. 게다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며칠 사이 강추위가 몰아 닥쳤다. 이럴 때 제격인 와인이 ‘뱅쇼’라 불리는 술이다. 특정 와인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뜨거운 와인’이라는 뜻이다. 손이 시릴 때 따끈한 정종 한잔 생각 나듯이 프랑스 사람들은 겨울에 잔을 호호 불며 뱅쇼를 즐긴다. 뱅쇼는 레드와인에 계피와 상큼한 과일 등을 넣어 다린 것으로 맛과 향이 독특하다. 12월 스트라스부르에서 마셨던 뱅쇼 한잔을 떠올리니 벌써 군침이 흐른다. 국내에도 와인 애호가들이 많아 뱅쇼 만드는 법도 잘 소개돼 있다.

술이 체질적으로 약한 사람은 와인에 물이나 얼음을 타서 드셔 보시라. 소주, 위스키에 물을 타서 마시는 이른바 일본식 미주와리와 비슷하다. 품격을 따지는 사람에게는 귀한 와인에 물을 타다니, 실로 야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파리의 뒷골목에서 흰머리 풀풀 난 노인네들이 독한 알코올을 감당하기 힘들어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시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따라해 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꼭 와인을 적정한 온도와 농도에 맞춰 마셔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형식주의에 불과하다. 파리 서쪽으로 40킬로미터 쯤 나가면 나시오날(National)이라는 명문 골프장이 있다. 매년 EPGA의 주요 대회인 프랑스 오픈이 열리는 곳이다. 이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는 중부 르와르 지방 소뮤르(Saumur)의 샹피니(Champigny)라는 상큼하고 부드러운 와인을 팔고 있다. 더운 여름 라운딩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 돌아와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은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이지만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는 늘 그렇듯이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상큼한 샹피니를 차게 냉장 보관했다가 개봉해 한 모금 넘기는 맛은 맥주와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더우면 와인에도 과감하게 얼음을 타서 마셔보라. 뜻밖의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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